17년을 농락한 유령 방화범의 귀환
지난 2월 경남 함양에서 발생해 축구장 327개 넓이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든 대형 산불의 범인이 검거됐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과거 울산 봉대산 일대를 17년간 공포에 떨게 했던 '봉대산 불다람쥐'로 불리는 연쇄 방화범 김모(67) 씨였습니다. 김씨는 1994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96건의 방화를 저지르며 수사망을 피해 다녔고, 2011년 결국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2021년 출소 후 고향인 함양으로 돌아와 다시 불을 지른 겁니다. 출소 불과 4년 만에 다시 들불을 일으킨 셈이죠.
경찰 수사에 따르면 김씨는 올해 1월부터 함양과 인근 남원에서 산불을 3차례나 일으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지난달 21일 함양 마천면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초속 20m의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확산되며 국가소방동원령이 발령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불을 보면 희열을 느끀고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범행 수법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인적이 드문 야산을 노린 점에서 유사했습니다.
발화점을 찾아낸 과학 수사의 힘
이렇게 오랜 기간 방화를 일삼은 유령 같은 범인을 잡아낸 데에는 산림청의 과학적인 감식 기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산불이 발생한 지난 2월 23일, 산림청 산불전문조사반이 현장에 투입됐습니다. 조사반은 연소 패턴을 분석하고, V자형으로 탄 나무의 흔적, 발화 지점 토양의 색상 변화, 연소 강도 등을 면밀히 조사했습니다. 이러한 정밀한 과학 수사를 통해 최초로 불이 붙은 정확한 지점을 특정하는 데 성공한 거죠.
산림청은 이 감식 결과를 바탕으로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과 긴밀하게 협력했습니다. 현장 주변 CCTV 분석과 용의자의 이동 동선 추적에 과학적으로 규명된 발화 지점 정보가 중요한 단서로 작용했습니다. 권춘근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과 박사는 산불 원인 조사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증거만이 아니라 연소 흔적, 확산 방향, 지형과 바람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복잡한 과학 과정임을 강조했습니다. 산림청의 신속한 대응과 정확한 데이터 제공 없었다면, 과거처럼 수사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남은 과제: 재발 방지와 피해 복구
범인은 잡혔지만, 이번 사건이 남긴 상처와 과제는 큽니다. 234헥타르에 달하는 산림이 소실되었고, 인근 비닐하우스와 농막 여러 동이 전소되는 재산 피해도 발생했습니다. 지역 주민 80여 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죠.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과거 중범죄를 저지른 방화범의 재범 가능성과 사회적 관리의 문제를 다시 한번 환기시켰습니다. 주민들은 산불 예방 중심의 관리 체계 강화를 촉구하고 있으며, 특히 방화범 검거 소식에 대한 불안감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산림청과 경찰 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협력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원명수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과장은 과학적 감식 기술을 지속 발전시켜 산불 원인을 신속 정확하게 규명하고, 관계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해 산불 범죄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김씨에 대한 재판이 앞으로 진행될 예정인데, 90건이 넘는 방화 전력과 출소 후의 재범 사실이 고려되어 엄중한 처벌이 예상됩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방화 사건을 넘어, 반복적 범죄를 저지르는 특정 범죄자에 대한 사회의 효과적인 관리와 재범 방지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