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빼낸 중견국 동맹, 현실성 있나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차관이 최근 필리핀 마닐라에서 미국을 배제한 중견국 간 안보 협력 구상을 향해 날을 세웠습니다. 그는 이를 두고 "망상"이라고 강하게 규정하며, 미국을 제외한 연대는 실질적인 억제력을 갖출 수 없다고 주장했죠. 콜비 차관의 이번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 이후 동맹국들 사이에서 불신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 중심의 안보 질서를 재확인하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미국이 동맹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국익 우선의 관계로 재조정하고 있다는 설명은 기존과 다른 조건을 제시하는 셈입니다. 콜비 차관은 미국이 원하는 것은 보호국이 아닌 책임을 공유하는 파트너라고 강조했는데요, 이는 방위비 증액과 자국 방위 역량 확대를 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관된 기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동맹국들이 미국의 안보 제공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셈이죠.
제1도련선에 편입된 한반도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일본 규슈와 오키나와를 거쳐 대만,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제1도련선'을 중심으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은 중국의 군사적 도발이 성공할 수 없게 만드는 '거부에 의한 억제'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일본은 토마호크 미사일을 도입하고 장기전 군수체계를 준비하고 있고, 대만은 정보망과 정밀타격 능력을 키우며, 필리핀은 타이폰 미사일 배치와 미군 기지 확대로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킬웹 구조 속에서 한반도 역시 중요한 축으로 편입되어 있습니다. 주한미군 기지들은 오산의 민첩한 전투운용 거점, 군산의 무인기 및 재급유 시설, 광주의 증원 거점 등으로 기능이 강화되며 역내 작전기지화가 진행 중입니다. 다만 이와 함께 한국이 북한 방어에 더 큰 책임을 지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억제 태세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압박도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동맹 불안과 전략적 자율성의 딜레마
미국의 강경한 메시지와 달리 현실적인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세스 존스 CSIS 국장은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미군 기지가 북한과 중국의 미사일 및 드론 공격에 매우 취약하다고 경고했습니다. 중동 분쟁으로 핵심 방공 자산이 차출되면서 아시아 방어망에 구멍이 생겼다는 지적인데요, 이는 미국의 아시아 최우선 선언과 실제 전력 배치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로 중견국 연대가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외교가에서는 이를 동맹의 대체재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우세합니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너무 달라 중견국 간 결집만으로 안보와 경제를 아우르기 어렵기 때문인데요. 우리 정부 역시 한미동맹을 기본축으로 삼으면서도 싱가포르, 캐나다 등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전략적 자율성 확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방한을 앞둔 지금, 한국은 대미 관계 공고화와 대중 관계 회복이라는 까다로운 과제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