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서 터진 분노
프랑스에서 시작된 고물가·저임금 시위가 유럽 전역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시위대가 상점 출입구를 부수고 물건을 약탈했고, 두오모 광장에서는 경찰과 대치하다 충돌이 벌어졌는데요. 시가전을 방불케 한 이날 사태로 271명이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매주 토요일로 예고된 시위에 대비해 밀라노에 군 병력 500명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로마와 볼로냐에서도 시위가 이어졌고, 나폴리와 시칠리아에서는 트럭 운전사들이 도로와 항구를 막고 경유값 인상에 항의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부상자가 나오고 야간 통행 제한 조치가 내려졌다는 보도도 전해집니다.
불똥은 다른 나라로도 튀었습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집값과 임대료 폭등에 반발한 시민들이 도심 한복판에 텐트를 치고 노숙 시위를 벌이고 있고, 벨기에와 알바니아에서는 교육비 인상과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알바니아의 반정부 시위는 6월부터 이어지며 정부 건물을 태우고 관청을 점거하는 사태로까지 확대됐습니다.
왜 지금, 생활비인가
배경에는 중동 전쟁 여파로 치솟은 기름값이 자리합니다. 에너지 비용이 오르면 운송비와 식료품값이 줄줄이 따라 오르는데, 임금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주거비와 교육비 부담까지 겹치면서 못 살겠다는 말이 거리로 나온 겁니다.
소비의 양극화도 뚜렷합니다. 프랑스 중고 명품 시장에는 루이비통과 에르메스 가방이 파격적인 가격에 올라와 화제가 됐는데요. 생활비 부담에 중고 거래로 눈을 돌리는 수요가 늘었다는 분석과, 값싼 가품이 섞여 들어왔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옵니다. 정가 대신 중고로 향하는 흐름 자체는 유럽 전역에서 감지되는 변화입니다.
정치 지형을 흔드는 변수
영국 가디언은 프랑스 시위가 격화되면서 극우 정권이 집권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고 전했습니다. 정부 대응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커질수록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그 빈틈을 극우가 파고들 수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시위가 폭력으로 흐르면 여론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문제는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재정난이 깊어진 상황에서 임금을 올리고 물가를 잡을 카드가 마땅치 않습니다. 시위가 매주 반복될수록 유럽 정치권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에서도 생활비 부담이 정치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만큼, 유럽의 실험이 어디로 향할지 지켜볼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