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바뀌었지만 기준은 없다
오는 4월 2일부터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되며, 약물운전에 대한 처벌이 본격적으로 강화됩니다. 이른바 ‘압구정 롤스로이스’나 ‘반포대교 포르쉐’ 사고 같은 충격적인 사건들이 사회적 경각심을 높인 결과인데요. 그러나 법 개정의 핵심인 ‘운전 영향’ 입증에 필요한 구체적인 기준이 전무한 상태라, 오히려 현장에서는 혼란이 예상됩니다. 즉, 처벌의 문턱은 낮아졌지만, 그 문턱을 가르는 객관적 자는 아직 마련되지 않은 셈이죠.
현행법에 따르면 마약류에 해당하는 490종의 약물을 복용하고 운전 능력이 저하되었다고 판단되면 처벌 대상이 됩니다. 문제는 ‘운전 능력 저하’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입니다. 경찰은 ‘상태 평가’나 간이시약을 활용할 예정이지만, 이는 운전자의 외부 증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약물의 종류에 따라 졸음, 초조함, 환각 등 증상이 천차만별이고, 같은 약물이라도 개인별 반응과 복용량에 따라 영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이런 복잡한 변수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과학적 지표나 등급이 전혀 없습니다.
매일 먹는 비염약도 위험한가
가장 큰 논란은 일반 의약품의 포괄적 적용 가능성입니다. 새 법은 마약류를 명시했지만, 운전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물’에 대한 정의가 포괄적이어서 해석에 따라 일반 감기약이나 비염약 복용자까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경찰은 과학적 기준을 마련해 무분별한 처벌을 방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어느 수준부터 위험한가’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일반 의약품 복용 운전자들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일부 의약품은 졸음 유발 부작용이 있어 복용 후 운전을 금지하는 경고문을 붙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법적 기준으로 삼기에는 약물 종류가 너무 많고, 개인별 체질과 내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처벌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춰, 약국에서 의약품을 조제할 때 운전 제한 약물에 대한 명확한 안내와 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해결 과제는 명확한 ‘선’ 그리기
향후 핵심 과제는 무엇보다도 객관적이고 예측 가능한 기준을 세우는 일입니다. 이는 단순히 경찰의 단속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법을 준수할 수 있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약물별 혈중 농도와 운전 능력 저하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국내 연구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합니다. 특정 약물을 얼마나 섭취했을 때, 몇 시간 동안 운전을 삼가야 하는지에 대한 국가적 표준이 마련된다면, 법의 모호성과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아울러 단속과 처벌만이 답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약물운전의 심각성을 알리는 대국민 캠페인과 함께, 운전자가 자신이 복용한 약물의 영향을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방법을 보급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법이 시행되기까지 남은 시간 동안 이러한 기준 마련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리고 현장의 혼란이 최소화될 수 있을지가 주목받을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