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전력난, 배전망이 답하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가 쏟아내는 전력 수요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2일 서울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에서 열린 '2026 국제배전협의회(CIRED) 워크숍'의 화두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1971년 창설된 CIRED의 공식 워크숍이 아시아에서 열린 건 이번이 처음으로, 31개국에서 320여 명이 참석해 172편의 논문을 나눴습니다.
기조연설에 나선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은 해법으로 직류(DC) 기반 지능형 전력망을 꼽았습니다. AI 서버와 반도체는 직류로 작동하는데, 지금은 외부에서 받은 교류를 다시 직류로 바꾸는 과정에서 손실이 생깁니다. 직류 배전망을 쓰면 이 변환 과정을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안토니오 카마로타 CIRED 이사회 의장도 같은 방향을 짚었습니다. 태양광과 풍력, 전기차 충전, 수요반응 자원이 배전망으로 몰려들면서 배전망은 단순한 전력 통로가 아니라 에너지시스템의 중심으로 이동했다는 설명입니다.
'AI를 위한 전력망', '전력망을 위한 AI'
구 회장이 강조한 건 선순환 구조입니다. 대규모 전력을 쓰는 데이터센터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려면 신뢰도 높은 전력망이 받쳐줘야 하고, 다시 그 전력망을 AI가 예측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구상입니다. 그는 이를 'AI를 위한 전력망'과 '전력망을 위한 AI'로 압축했습니다.
사업 성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LS일렉트릭은 북미에서 전력변환장치(PCS)와 데이터센터 맞춤형 솔루션을 잇달아 수주했고, 1500V 이하 저압 직류 제품군에서는 세계 3위권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반도체변압기(SST)와 반도체차단기(SSCB) 검증을 마쳤고, 천안사업장 'DC 팩토리'에서는 실제 설비를 돌리며 상용화 가능성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이 800V 직류 중심으로 바뀌면 관련 제품 수요가 크게 늘 것이란 전망입니다.
증설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만으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박종배 대한전기학회 회장은 배전망이 생산과 저장, 소비를 실시간으로 조율하는 능동적 계통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지역 ESS와 수요반응 활용, 배전선로별 여건을 반영한 가격체계 연구를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정하중 지멘스코리아 대표는 인허가와 건설, 공급망 제약 탓에 증설만으로는 수요 증가를 따라가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하고 AI 기반 자율운영을 확대하되, 인간 감독과 사이버보안, 데이터 거버넌스를 설계 초기부터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2030년까지 배전망 ESS 700MW 구축과 제주 재생에너지 입찰·실시간시장 시범운영을 추진 중입니다. 배전 인프라 시장은 2030년 1500억달러, 약 200조원 규모로 커질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