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미투 피해자 김현진 씨 28세로 별세…8년간 이어진 고통의 끝

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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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달 전 수정 · 2026년 4월 18일 오후 12:55

발행: 2026년 4월 18일 오후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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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문단 내 성폭력 미투 운동 당시 박진성 시인의 피해를 폭로했던 김현진 씨가 28세로 사망했다. 그는 폭로 후 박진성 시인의 2차 가해와 소송에 시달렸으며, 박진성 시인은 2024년 유죄 판결을 받았다. 김현진 씨의 죽음은 성폭력 피해 폭로 이후의 고통과 사회적 보호 체계의 한계를 드러내는 사례로 남았다.

용기 뒤에 남은 깊은 상처

박진성 시인의 성폭력 피해를 폭로했던 김현진 씨가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미투 운동의 중심에 섰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폭로 이후 8년간 지속된 2차 가해와 법정 공방의 무게가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인의 법률대리인은 그를 “용기 있고 총명한 청춘”으로 추모했는데요, 그 용기의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발인은 18일 오후에 진행됐습니다. 정확한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김현진 씨의 죽음은 성폭력 피해 폭로 이후 맞닥뜨리는 사회적 고립과 지속적인 괴롭힘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줍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그의 명복을 빌며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폭로에서 법정까지, 8년의 긴 싸움

모든 것은 2016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문화예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한 김현진 씨는 박진성 시인으로부터 받은 성희롱과 언어성폭력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17세였습니다. 처음에는 가해자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박진성 시인의 회유와 위협에 직면한 뒤 용기를 내어 이름을 밝혔고, 이는 다른 피해자들의 추가 고발로 이어지며 문단 내 만연한 성폭력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를 촉발했습니다.

하지만 피해 공개는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박진성 시인은 이에 대해 ‘가짜 미투’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고발자들을 공격하는 입장을 취했는데요, 2019년에는 김현진 씨의 개인정보를 SNS에 유포하는 등 명백한 2차 가해를 자행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피해자였던 김현진 씨를 상대로 오히려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했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이례적인 상황은 피해자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과 법적 부담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런 박진성 시인의 행동은 결국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2024년, 그는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1년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민사 법원은 그를 ‘무고 범죄자’로 규정하며 김현진 씨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법적 승리는 있었지만, 그 과정 전체가 고인에게는 견디기 힘든 전쟁이었을 것입니다.

남겨진 질문과 우리 사회의 과제

김현진 씨는 생전인 2021년, 자신의 생일이자 민사 소송 1심 종결 직전에 한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증언하며 많은 이에게 힘이 되고 싶어 했지만, 동시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글을 SNS에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폭로 후 맞게 되는 2차 가해의 구조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그리고 법적 승리만으로는 상처가 치유되지 않을 수 있음을 안타깝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박진성 시인은 현재까지도 별다른 공식 입장 표명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으며, 그의 시집은 여전히 유통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조는 가해자의 삶과 피해자가 겪는 고통 사이의 현격한 괴리를 보여주며, 사건이 법적으로 ‘종결’되었다고 해서 사회적, 정서적 갈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님을 시사합니다.

김현진 씨의 죽음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사회는 용기 있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지지하고, 폭로 이후 따라오는 2차 피해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미투 운동이 시작된 지 8년이 지났지만, 피해자 지원 시스템과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의 아픔이 개인의 비극으로 머무르지 않고, 더 나은 제도와 문화를 만드는 발판이 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