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하나가 열어준 비극
경기도 광주에서 30대 남성이 별거 중이던 아내를 찾아가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남성은 이혼 소송을 진행하며 법원이 송달한 서류에 적힌 아내의 새 주소를 보고 집 앞까지 찾아갔는데요. 범행 현장에는 5살 딸이 함께 있었고, 아이는 엄마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주소 하나가 생명을 앗아간 셈이죠.
법원이 낸 보호 조치, 오히려 살인 길목이 됐다
피해자는 이미 4년 전 남편의 폭행으로 집을 옮겼습니다. 하지만 일주일도 채 안 돼 주소가 드러났고, 이번에도 이혼 소송 서류에 새 거주지가 그대로 찍혀 있었습니다. 법원은 이틀 만에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지만, 그 결정문에 피해자 주소가 명시되어 있었는데요. 대법원은 2016년부터 위협이 있을 경우 주소를 생략할 수 있도록 장려했지만, 일선 법원은 수사기관의 요청이 없으면 판단이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결국 법원이 내려준 보호 조치가 오히려 가해자의 손에 피해자 주소를 전달한 꼴이 됩니다.
반면 경찰의 초기 대응도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가해자는 지난 3월부터 아내를 흉기로 위협하는 등 4차례 가정폭력 신고를 받았고, 6월에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할 때 혐의를 '특수협박'에서 빼면서 구속에 실패했고, 이후 이혼 소장을 받은 남성은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바뀌어도 남는 사각지대, 이제는 어떻게 막을까
현행 민사소송법은 피해자가 직접 주소 비공개를 신청해야만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게다가 가해자가 먼저 소송을 제기하면 '주소보정명령'이라는 제도로 상대방 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지난해 개정된 민사소송법 제163조가 개인정보 비공개를 가능하게 했지만, 신청 여부는 여전히 피해자의 몫입니다. 제도는 바뀌었는데, 현장에서는 여전히 피해자가 스스로 벽을 쌓아야 하는 겁니다.
용인 보복살인 사건처럼 과거에도 비슷한 비극이 반복되었고, 미국 45개 주에서 시행하는 주소 기밀유지 프로그램처럼 법원이 적극적으로 보호 절차를 안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경찰은 이번에 가해자에게 친권 정지와 접근금지 등 임시조치를 신청하고, 살인과 함께 아동학대 혐의를 추가로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돌아가지 않는 생명이 있고, 5살 딸은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보호 체계의 허술함을 드러낸 이번 사건이 제도 개선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