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 시장에 부는 체념의 바람
대학을 졸업해도, 졸업을 앞둔 상태여도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는 청년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인협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학 4학년생 및 졸업자 10명 중 6명 이상(60.5%)이 ‘소극적 구직자’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구직 활동을 ‘의례적으로만 한다’, ‘거의 하지 않는다’, 혹은 아예 ‘쉬고 있다’고 답했죠. 통계상 ‘쉬었음’ 인구는 73만 명에 달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 중입니다. 단순히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는 체념이 청년 구직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소극적 태도의 배경에는 뚜렷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응답자의 37.5%는 자신의 ‘역량·기술·지식 부족’을 꼽았습니다. 좋은 일자리에 도전하기 전, 스스로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거죠. 더 직접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구직 활동을 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것 같아서’라는 응답이 22%에 달했고, ‘전공 또는 관심 분야 일자리 부족’(16.2%), ‘적합한 임금수준 등 근로조건을 갖춘 일자리 부족’(13.6%)이 뒤를 이었습니다. 일자리가 아예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일자리’가 없다는 체감이 더 큽니다.
“혹시나 해서 내는데, 역시나겠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취준생들의 상황도 녹록지 않습니다. 적극 구직자들은 평균 13.4개의 회사에 입사 지원했지만, 서류 전형을 통과한 건 평균 2.6회에 불과했습니다. 합격률로 따지면 약 19.4% 수준입니다. 10번 지원하면 8번은 서류에서 떨어진다는 계산이 나오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기대’라는 감정은 사라집니다. 한 취준생의 말처럼 “혹시나 해서 내는데, 이번에도 역시나겠죠”라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제출하는 게 현실이 된 겁니다.
이런 무기력함은 숫자로도 확인됩니다. 올해 대졸 신규채용 시장이 “지난해보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37.1%로, 오히려 소폭 상승했습니다. 취업 준비 기간에 대한 전망도 비관적입니다. 응답자의 62.6%가 준비 기간이 ‘6개월 이상’ 걸릴 것이라고 봤고, 그중 32.5%는 ‘1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실제로 국가데이터처 조사에 따르면, 청년 미취업자 중 1년 이상 장기 미취업자 비율은 55.2%에 이릅니다. 취업의 터널이 점점 더 길고 어두워진다는 인식이 팽배해진 거죠.
누적된 구조적 문제들
청년들의 체념에는 여러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첫째는 기업의 채용 행태 변화입니다. 기업들은 신입보다는 즉시 전력이 되는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대외 불확실성과 국내 노동 규제 강화로 채용 자체에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이런 환경이 기업들의 신규 채용 여력을 줄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둘째는 지역 불균형 문제입니다. 조사에 응한 구직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기업의 75%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경상도가 12%로 그 뒤를 잇는 반면, 전라도는 3%, 강원도와 제주도는 각각 1%, 0%에 그쳤습니다. 좋다고 생각하는 일자리의 지리적 편중이 심각해지면서, 지역 청년들의 선택지는 본의 아니게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는 채용 과정 자체에 대한 불신입니다. 취준생들은 채용 과정에서 ‘학력 및 출신 학교 차별’(29.9%), ‘인맥 및 지인 추천’(18.1%), ‘AI 채용 시스템의 오류’(14.9%) 등을 불공정 요소로 꼽았습니다. 노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에 대한 우려가 구직 의욕을 꺾는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청년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명확했습니다. 취업난 해소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규제 완화 등을 통한 기업 고용 여건 개선’(29.9%)을 첫 손에 꼽았습니다. 기업이 살아나야 일자리가 생긴다는 단순한 논리죠. 이어서 ‘진로지도 강화 및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18.1%), ‘신산업 분야 직업훈련 확대’(14.9%) 등 개인의 역량을 키우고 시장 수요에 맞추는 방안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전문가들도 유사한 지적을 합니다. 한국경제인협회 이상호 경제산업본부장은 청년 일자리를 위축시킬 수 있는 정책(예: 정년 연장)의 추진은 신중해야 하며, 규제 완화와 투자 지원으로 기업의 활력을 북돋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청년 구직 시장의 침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채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과, 청년이 시장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두 축이 모두 필요해 보입니다.
앞으로의 전망은 쉽지 않습니다.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청년들이 다시 구직 시장에 뛰어들도록 만드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 숫자를 늘리는 것 이상의 과제입니다. 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는 채용 과정, 합리적인 근로 조건, 그리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함께 회복시켜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소극적 구직 현상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장기화된 취업 전쟁에서 생존을 위해 선택한 일종의 ‘에너지 절약 모드’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