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가 물러나고 베인 SPC가 올라선 순간
일본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키옥시아의 주주 명부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기존 최대주주였던 도시바가 지난 7월 15일부터 8월 3일까지 총 일곱 차례에 걸쳐 주식을 매각하면서 보유 비율이 14%대 초반으로 낮아졌는데요. 그 사이 베인캐피털이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인 'BCPE 판게아 케이먼2'가 14.19%의 지분을 확보하며 단일 최대주주로 올라섰습니다.
이 SPC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SK하이닉스를 두고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해당 SPC가 발행한 전환사채(CB)를 보유하고 있어, 이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SPC 의결권 대부분을 사실상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재는 의결권이 없는 채권 형태라 즉각적인 경영 참여는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7년 전 인수가 만든 지분 구조의 함정
이번 지분 구조는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제대로 이해됩니다. 당시 경영난을 겪던 도시바의 메모리 사업부를 베인캐피털 주도의 한미일 컨소시엄이 인수하면서 시작되었는데요. SK하이닉스는 이 과정에서 총 3,950억 엔 규모를 출자하며 지분을 간접 확보했습니다.
사실 이런 구조는 당시 경쟁 제한 우려를 의식한 결과물입니다. SK하이닉스가 곧바로 경영권을 쥐는 모습을 피하기 위해 전환사채라는 간접 투자 방식을 택한 것인데요. 여기에 더해 키옥시아 동의 없이는 2028년까지 의결권 지분을 15% 이하로 유지하기로 약정한 상태입니다. 반대로 키옥시아 측은 SK하이닉스를 직접 경쟁사로 보고 있어, 연차보고서를 통해 이해상충 가능성을 위험요인으로 명시하기도 했습니다.
경쟁사 간의 묘한 지분 관계, 낸드 시장에 미칠 파장은
키옥시아는 세계 최초로 낸드플래시를 개발한 도시바의 전통을 이은 기업으로,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상위권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24년 12월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이후 AI 데이터센터 수요 확대로 기업 가치가 크게 상승했는데요. 도시바는 이런 흐름을 이용해 지분을 단계적으로 현금화하며 투자금을 회수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SK하이닉스 역시 상당한 평가 차익을 거둔 것으로 풀이됩니다.
당연히 이번 최대주주 변경이 곧장 낸드 시장의 지배구조를 뒤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주식 전환을 위해서는 각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와 일본 정부의 외국인 투자 관련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28년 약정 종료 시점을 앞두고 SK하이닉스가 취할 전략적 선택은 향후 글로벌 낸드 시장의 핵심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SK하이닉스 산하에 솔리다임까지 두고 있는 상황에서 키옥시아와의 관계 설정은 업계 전체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