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이 팽팽한 증원안
대법관을 14명에서 26명으로 대폭 늘리자는 더불어민주당의 사법개혁안이 법조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주최한 사법 제도 개편 공청회 이틀째, 증원안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팽팽하게 맞섰는데요. 한쪽에서는 상고심의 과도한 업무 부담을 해소하고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필수 조치라고 주장합니다. 반대 측은 단기간에 대법관을 급격히 늘리는 것이 정치적 의도로 읽힐 수 있고, 오히려 대법원의 권위와 판결 통일성을 해칠 수 있다며 강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핵심 논점은 이번 증원이 과연 ‘코트 패킹’에 해당하느냐는 점입니다. 코트 패킹이란 정권이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법관 수를 늘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에서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이 나온 직후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이 재판의 독립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는 특정 정권 시기에 최고 법원 조직을 급격히 증원하는 것은 반대 정파에게 코트 패킹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습니다.
상고심의 구조적 문제와 해법 모색
증원 논의의 배경에는 현행 상고심 제도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재 대법관 1인당 연간 3,000건 이상의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과도한 업무 부담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수준입니다. 이로 인해 각 사건에 충분한 시간을 할당하기 어려워지고, 대법관의 전문성 저하와 권위 실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증원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히는 것이 ‘하급심 충실화’입니다. 오용규 전 사법연수원 교수는 대법관 증원으로 사건 부담은 줄어들 수 있지만, 대법원의 권위 저하 및 예산 증가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실심을 강화해 1심 재판의 질을 높이는 것이 상고 사건 수를 줄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나 민사 배심제 도입 등을 통해 1심에서 충분한 심리가 이뤄져야 상고로 넘어가는 사건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겁니다.
증원 자체에 찬성하는 측에서도 무조건적인 확대보다는 점진적인 접근을 제안합니다. 김도형 수원지법 안산지원 부장판사는 대법관이 2배로 늘어나면 대법원의 심도 있는 논의가 어려워지고, 상고심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정치적 오해를 방지하고 제도의 안정성을 고려해 적정 증원 규모를 4명으로 제시하며 단계적으로 늘려나가야 한다고 봤습니다.
전원합의체와 권한 재편 논의
대법관 수가 크게 늘어날 경우 직면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전원합의체’ 운영입니다. 전원합의체는 중요 사건을 모든 대법관이 모여 논의하는 제도인데, 대법관이 26명으로 늘어나면 효율적인 논의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는 판결의 통일성을 해칠 우려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각에서는 대법원의 역할 자체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법원을 최종 법률 해석 기관이 아닌, 권리 구제를 담당하는 전문 상고심 기관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보연 변호사의 주장처럼, 최종적인 권리 구제 기능에 집중하고 헌법 해석과 같은 사항은 헌법재판소에 맡기는 방안이 제안된 것이죠. 이 경우 대법관을 대폭 증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 사전 심리 논쟁
이번 공청회에서는 대법관 증원 외에도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전 ‘사전 대면 심리’ 도입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조은경 대구지법 부장판사는 서면 심리만으로는 충분한 판단이 어렵다고 지적하며, 대면 심리를 통해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 압수수색은 ‘제2의 신체구속’이나 다름없어 사법적 통제가 더욱 필요하다는 의견입니다.
반면 검찰 측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소재환 대전지검 부장검사는 사전심문이 수사 지연과 증거인멸을 초래할 수 있으며, 법원이 수사 과정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다만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구속영장 실질심사 도입 당시 검찰의 비슷한 우려가 기우로 드러났던 점을 지적하며, 사전심문 도입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내비쳤습니다.
신뢰 회복이 선결 과제
이 모든 논의의 밑바탕에는 대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 문제가 깔려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논란과 심리불속행(상고기각) 비율이 높아지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이 사실입니다. 여연심 변호사는 대법관 전원이 기록을 실제로 확인했는지 여부와 같은 재판 과정의 투명성 문제를 제기하며, 개혁의 전제는 무엇보다도 사법 과정에 대한 신뢰를 쌓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대법관 증원이 단순히 인원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 우리 사법 시스템의 근본적인 효율성과 정당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상고심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과 동시에 하급심을 튼튼하게 만드는 일, 그리고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로운 공정한 절차를 확립하는 일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