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감보다는 본능에 맡겨야 할 때
도쿄돔에서 다시 한번 숙명의 한일전이 펼쳐집니다.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C조 2차전으로 맞붙는 한국과 일본의 이번 경기는 단순한 조별리그 경기를 넘어, 한국 야구에게는 오랜 굴욕을 씻어내야 하는 자존심 대결입니다. 한국은 2015년 이후 일본과의 공식전에서 1무 10패, 사실상 11경기 연속 승리 없음이라는 무거운 기록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선발 투수로 낙점된 고영표는 ‘왜 나일까’라는 생각에 며칠을 고민했다고 털어놓았지만, 결국 생각을 비우고 ‘본능’에 맡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지난 대회들의 아픈 기억을 딛고 선발 마운드에 서는 그의 심정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에이스 대 에이스, 그러나 다른 무게
양 팀의 선발 카드는 모두 예상 안이었습니다. 한국은 KBO 리그를 대표하는 ‘잠수함’ 에이스 고영표를, 일본은 메이저리그에서 꾸준한 경력을 쌓아온 좌완 투수 기쿠치 유세이를 내세웠습니다. 고영표는 국내에서 ‘고퀄스’라는 별명처럼 퀄리티 스타트를 책임지는 안정적인 투구가 장점이지만, 국제 대회 무대에서는 아직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반면 기쿠치는 이미 빅리그에서 199경기를 소화한 노련미와 최근 156km/h의 빠른 공을 보여준 구위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맞대결은 단순한 실력 비교가 아니라, 국제전 경험과 무게감에서 출발선부터 다른 승부입니다.
한국 대표팀의 최근 흐름은 공격력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체코와의 평가전에서만 8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맹위를 떨쳤고, 문보경의 그랜드슬램을 비롯해 위트컴, 김도영 등 다양한 타자들의 방망이가 불을 뿜고 있습니다. 하지만 승부를 결정짓는 건 역시 마운드입니다. 평가전에서 보여준 불안한 피칭과 9안타를 허용한 모습은 일본의 강력한 타선 앞에서 큰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류지현 감독도 공격력은 믿지만 투수 보강이 시급하다는 점을 인정한 상태죠.
기록을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승리뿐
도쿄돔은 일본 야구의 성지이자, 한국에게는 ‘승리가 기억나지 않는’ 장소입니다. 이 환경과 오랜 패배의 역사는 한국 선수들에게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고영표는 돔구장의 홈런 친화적 환경과 공인구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공격적인 투구에 집중하겠다고 말합니다. 결국 모든 분석과 우려는 경기가 시작되면 의미가 퇴색되고, 그라운드에서의 결과만이 남습니다. 한국은 젊은 선수들의 패기와 폭발적인 타선으로 초반을 잡아야 하며, 고영표는 자신의 장점인 낮은 투구와 칼 같은 제구로 일본 타선을 무너뜨리는 선봉장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일본전 10연패. 이 숫자는 한국 야구팬들에게는 오랜 아픔입니다. 이 기록을 끊기 위해 필요한 건 복잡한 전략보다는 선수들의 집중력과 승리에 대한 굳은 의지일 겁니다. 오랜 숙적을 마주한 이번 경기는 8강 진출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위한 발판이자, 동시에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는 첫 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이야기는 방망이와 공이 맞부딪히는 그 순간부터 시작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