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라 불린 청년들이 거리로 나섰다
인도에서 의대 입학시험 문제 유출 사태를 계기로 시작된 대규모 청년 시위가 49일 만에 일단락되었습니다. 지난 25일, 다르멘드라 프라단 교육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하며 물러났고, 이에 시위를 주도했던 Z세대 단체 '바퀴벌레국민당(CJP)'은 투쟁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뉴델리 잔타르 만타르 광장에 모였던 수천 명의 청년들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승리를 자축했는데요. 이는 2014년 집권한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대중 시위 압력에 밀려 현직 장관을 경질한 이례적인 사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시위의 불씨는 지난 5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약 220만 명이 응시한 전국 의대 입학 자격시험(NEET)에서 문제 유출과 부실 운영이 드러났습니다. 재시험에 대한 극심한 압박 속에서 최소 10명의 수험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속출했고, 전국적으로 공분이 커졌죠. 여기에 수리야 칸트 인도 대법원장이 실업 상태의 청년들을 '바퀴벌레'에 빗대어 모욕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습니다.
조롱을 정치 무기로 바꾼 세대
이에 분노한 Z세대들은 조롱을 오히려 무기로 삼아 스스로를 '바퀴벌레'라 칭하며 CJP를 창당했습니다. 정치커뮤니케이션 전략가 아비지트 딥케 등이 이끈 이 단체는 SNS에서 팔로워가 수천만 명에 달하며 순식간에 세를 키웠는데요. 바퀴벌레 가면을 쓰고 거리로 나선 청년들의 모습은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졌고, 단순한 입시 부정 항의를 넘어 청년 실업과 기회 부족, 그리고 모디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에 대한 불만이 결합되며 시위는 확대되었습니다.
당연히 정부는 인터넷 차단과 5인 이상 집회 금지령으로 대응했고, 경찰은 최루탄과 진압봉을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사회운동가 소남 왕축이 강제 입원되는 등의 사태가 발생하며 반정부 여론은 더욱 거세졌죠. 이번 시위가 2020~2021년 농민 시위 이후 최대 규모로 번진 데에는 인도 청년층의 깊은 좌절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30세 미만 청년 실업률이 16.2%에 달하고, 15~29세 인구가 약 4억 명에 달하는 인도에서 입시와 취업은 생존을 건 문제입니다. 모디 정부가 내세운 경제 성장 이면에 임금 정체와 고용 시장 악화가 계속되자, 청년들의 누적된 불만은 이번 사태를 통해 폭발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모디 정부가 한발 물러선 이유
결국 모디 총리는 12년간 요직을 거친 핵심 측근인 프라단 장관의 사임을 받아들였습니다. 정부는 의대 시험 전면 개편과 비리 연루자 처벌, 시위 참가자 고소 취하, 숨진 수험생 유족 보상 등 시위대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습니다. 물론 정부는 반국가 세력의 악용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취지로 사퇴를 설명했지만, 외신들은 이를 모디 정부의 정치적 패배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양보의 배경에는 주변국 정세에 대한 정부의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최근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 네팔 등 인접 국가에서 Z세대가 주도한 시위가 정권 교체로 이어진 사례들이 잇따랐는데요. 인도 정부가 이러한 파장을 의식해 조기 진화를 선택한 것이라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내년 주요 주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핵심 지지층인 청년들의 이반을 막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입시 비리 항의를 넘어 인도 Z세대가 민주주의 안에서 집단적 영향력을 행사한 상징적인 사례로 남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