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 노인의 퇴거가 부른 거리 시위
1956년 아버지가 마련한 마드리드의 아파트에서 70년 가까이 살아온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은 2018년 건물주가 바뀌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월세가 500유로에서 2650유로로 뛰었고, 연금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죠. 결국 법원의 강제퇴거 명령으로 집을 떠나 병원에 입원했고, 이 사연이 알려지자 국민의 분노가 거리로 번졌습니다.
마드리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는 수백 개의 텐트가 들어섰고, 시위는 바르셀로나와 세비야, 말라가 등으로 확산됐습니다. 마드리드 세입자 조합은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됐다며 전국 단위 시위를 예고했죠. 한 노인의 퇴거가 스페인 주거 문제 전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셈입니다.
정부가 꺼내 든 다섯 가지 카드
스페인 정부는 2030년까지 세입자 강제퇴거를 금지하는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2028년까지 임대 계약을 자동 연장하고, 부실 자산을 헐값에 사들여 임대료를 올리는 이른바 벌처펀드의 투기 목적 주택 매입도 막겠다는 겁니다. 단기 임대와 방 단위 임대 규제 강화, 관광객 대상 임대 아파트에 대한 세금 인상, 일반 임대인과 세입자를 위한 세제 혜택까지 다섯 가지 조치가 담겼습니다.
보건부 장관 모니카 가르시아는 이번 조치가 500만 명이 넘는 세입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시위 덕분에 대책이 가능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임대차 계약을 자동 갱신하도록 하는 두 번째 법안 역시 취약 가구를 겨냥한 겁니다.
통과까지는 험로
연립 정부는 의회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법안 통과가 불확실합니다. 국민당의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는 8년 동안 스스로 만든 문제를 임기 연장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고, 카탈루냐 민족주의 정당 준츠는 소규모 임대인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모든 임대인을 한 바구니에 넣는 것은 실수라고 지적했습니다.
시장 상황도 만만치 않습니다. 올해 2분기 집값은 전년 대비 12.2% 올랐고, 중앙은행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필요한 물량보다 주택이 75만 채 부족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아바스칼의 변호인은 매달 500유로를 8년간 지급하는 조건으로 그가 집에 돌아갈 수 있는 예비 합의안을 제시한 상태입니다. 공급 부족과 규제 강화가 맞물리면서 스페인 주거 정책은 당분간 격랑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