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5적 마지막 인물 정호용 전 총장 별세...책임 논란은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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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달 전 수정 · 2026년 9월 14일 오후 10:33

발행: 2026년 9월 14일 오후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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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용 전 육군 참모총장이 향년 94세로 별세했습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핵심 인물이자 신군부 5적 마지막 생존자였던 그는 1997년 징역 7년형을 확정받았으나 끝내 진실 규명과 사과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5·18 단체들은 그의 죽음으로 책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며 부정축재 환수와 역사적 정의 회복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신군부 5적 마지막 생존자, 정호용 전 참모총장 별세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정호용 전 육군 참모총장이 향년 94세로 별세했습니다. 그는 전두환, 노태우, 이희성, 황영시와 함께 이른바 '신군부 5적'으로 불렸으며, 이들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는데요. 육사 11기 출신으로 군 경력을 쌓은 그는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후 육군참모총장직에까지 올랐습니다.

당연히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에도 그는 무력 진압의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민주화 이후 과거사 재판의 주요 쟁점이 되었고, 결국 1997년 내란목적살인 등 혐의로 징역 7년형을 확정받으며 법적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망이 역사적 물음에 마침표를 찍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진실 규명과 사과 없이...책임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정 전 총장의 별세 소식에 5·18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은 즉각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5·18서울기념사업회는 성명을 통해 그가 끝내 진실을 고백하거나 사과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고 강하게 비판했는데요. 단체는 오히려 그가 학살의 대가로 육군 참모총장과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을 거쳐 두 차례나 국회의원직을 역임하며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2019년에도 진상 규명 요청이 있었지만, 정 전 총장은 이를 묵살하고 자신은 학살 책임자가 아니라는 취지의 진정서를 제출하며 책임을 회피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당사자의 입을 통한 진실 규명이 좌절된 채 끝을 맺으면서, 피해자와 유족들의 한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입니다. 2024년 6월에는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희생자 7명을 추가로 확인하며 그를 다시 고발하는 등 법적 공방도 계속되어 왔습니다.

역사적 평가와 미완의 과제

정호용 전 총장의 죽음은 한국 현대사의 무거운 한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신군부 체제의 핵심 브레인이자 무력 진압의 주요 지휘부였던 인물이 세상을 떠난 것인데요. 다만 역사적 정의가 개인의 생로병사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여러 쟁점이 남아있습니다.

5·18 단체들은 앞으로도 5공 부정축재 환수특별법 제정을 위한 투쟁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잘못된 권력으로 축적된 부당한 이익을 환수하고, 가매장 및 암매장된 희생자들의 행적을 밝히는 일은 이제 사회 전체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과거가 덮이지 않으며, 오히려 그 책임을 어떻게 기록하고 어떤 정의를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담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