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쏟아붓는 밥상 물가
8월 들어 연일 이어지는 폭염이 장바구니를 직접 때리고 있습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집계를 보면 시금치 100g 소매가격은 한 달 전 784원에서 1,978원으로 152%나 급등했습니다. 오이와 애호박도 각각 54.8%, 46.6% 올랐는데요. 이뿐만 아니라 수산물 시장도 비상입니다. 대형마트에서 광어 회 300g은 2만 5천 원 안팎에 팔리며 3개월 전과 비교해 가격이 크게 뛰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이제 누구나 '히트플레이션'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기온 상승이 공급망을 흔들고 이것이 소비자 물가로 고스란히 전이되는 구조가 본격화된 겁니다. 한국은행 역시 이 문제를 간과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신현송 총재를 비롯한 금융통화위원회는 기후 인플레이션을 주요 물가 변수로 설정하고 3년 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경계 수위를 높였습니다.
땅과 바다를 짓누르는 고온
채소값이 급등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잎채소는 수분 증발이 빠르고 오이 같은 여름 채소는 고온에서 생장이 멈추거나 기형과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바다로 번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남해와 제주 바다 수온이 30도에 육박하면서 양식 광어가 집단 폐사했고, 전국적으로 양식어류 피해 신고가 86만 마리를 넘어섰습니다.
가축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닭과 오리 등 가금류를 중심으로 90만 마리가 넘는 폐사가 발생했습니다. 다만 정부는 폐사 물량이 전체 사육 규모의 극히 일부라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육지보다 늦게 식기 때문에 8월 말에서 9월 초에 수온이 정점을 찍습니다. 추석 수요와 맞물려 횟감과 채소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풀리지 않는 불평등과 다른 풍경
히트플레이션이 가장 아프게 내리치는 곳은 저소득층입니다. 분석 결과 저소득층이 느끼는 식비 부담은 고소득층보다 3.7배 높게 나타났습니다. 영세 상인들 역시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데요. 식자재 가격은 뛰는데 폭염으로 채소가 쉽게 썩어 버리는 양이 판매량을 넘어서면서 외상까지 늘어나는 실정입니다. 일부 전통시장에서는 장사를 포기하는 사례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반면 이런 와중에도 수박과 복숭아 같은 제철 과일은 전년보다 오히려 저렴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재배 면적 확대와 봄철 기상 호조로 작황이 좋았고, 농가들이 폭염 전 선제적으로 출하하면서 공급이 안정된 덕분입니다. 정부는 수산물 할인전과 조기 출하 유도로 수급 불안을 막겠다고 나섰지만, 기후 위기가 통화정책과 서민 경제를 동시에 옥죄는 이 여름은 쉽게 지나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