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던 기록, 33년 만에 빛을 보다
통일부가 지난 6월 30일,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진행된 남북 핵협상 관련 문서 3,836쪽을 공개했습니다. 2022년 첫 공개 이후 여덟 번째로 마련된 이번 자료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도출 과정과 이후 32차례 회담의 전모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의 긴박했던 협상 분위기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학계와 일반 시민들 모두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요.
협상 초기에는 공동선언 채택과 북한의 IAEA 사찰 수용, 남측의 '팀스피릿' 훈련 중단 발표 등 의미 있는 진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호사찰 규정 마련 단계에서 남측은 북한 군사시설 불시사찰을, 북측은 주한미군 핵시설 사찰을 요구하며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휴식시간에도 양측은 기 싸움을 멈추지 않았고, 체제 우월성을 겨루는 일종의 신경전마저 이어졌다고 합니다.
최우진 대표, 김일성 사진을 찢다
1992년 12월 열린 남북핵통제공동위 제13차 회의는 이번 공개 문서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꼽힙니다. 남측 대표 공로명 위원장이 북한의 사대성을 지적하며, 김일성 주석과 옛 소련 지도자 스탈린의 초상화가 나란히 실린 신문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북측 대표 최우진 위원장이 즉시 그 사진을 찢어버렸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북측은 '완전한 도발'이라며 강력히 반발하며 회의장이 소란에 휩싸였습니다. 최 위원장은 이후 공 위원장에게 탈모를 조롱하는 폭언까지 쏟아냈다고 전해지는데요.
회담장 밖에서도 충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992년 3월 대표접촉에서 임동원 남측 대표가 영변 핵시설 문제를 두고 최우진 대표를 비난했고, 공로명 대표와 최우진 대표 역시 서로의 외모와 지적 수준을 비하하는 막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양측 모두 '최고 존엄'을 내세우며 한 치의 양보도 없었던 셈입니다.
유인책 부재가 만든 비극적 결말
22차례의 핵통제공동위원회를 개최했음에도 상호사찰 규정을 마련하지 못한 채 협상이 결렬됐습니다. 이후 북핵 문제는 국제 현안으로 전환됐고 남북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는데요. 정승훈 남북회담 문서 공개 예비심사위원장은 남측이 유인책 없이 압박수단만 사용한 점을 협상력 측면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으로 꼽았습니다. 북한이 시간끌기 전략을 구사한 것도 분명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의 불시사찰을 요구한 남측의 입장이 협상 결렬을 재촉한 측면도 적지 않다는 평가입니다. 공개된 문서는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국회도서관, 각 권역 통일플러스센터에서 직접 열람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