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에서 마감한 수행자의 마지막 숨결
2026년 8월 22일 오전, 제주 서귀포 하예포구 인근 해상에서 명진 스님이 프리다이빙 연습 중 사고로 입적했습니다. 구조 당시 심정지 상태였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향년 76세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해경은 스님이 착용한 장비 등을 토대로 프리다이빙 연습 중 돌발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세수 일흔이 넘은 나이에 프리다이빙에 입문한 스님은 이를 단순한 취미가 아닌 수행의 연장선으로 여겼습니다. 수심 20m에 도전하며 생사의 경계를 직면하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 자체를 깨달음의 한 과정으로 삼았던 겁니다. 매년 여름 제주 남선사에 머물며 바다에 몸을 맡겼던 스님의 마지막 모습은 어쩌면 삶의 결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조계종 개혁과 사회적 약자의 곁
195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명진 스님은 베트남전 참전 후 1969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했습니다. 이후 1994년 조계종 종단 개혁을 주도했고, 중앙종회 의원과 부의장을 거쳐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봉은사 주지를 지냈습니다. 봉은사 주지 시절에는 1,000일 동안 매일 세 차례 1,000배 기도를 올리는 정진과 함께 사찰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스님의 관심은 종단 안팎을 넘어 사회적 약자에게까지 향했습니다. 2009년 용산 철거민 참사 유족에게 개인적으로 모은 1억 원을 전달했고,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유족의 곁을 지켰습니다. 특히 베트남 전쟁 피해자들 앞에 직접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리며 진정성 있는 사죄를 전했는데, 이는 스님이 과거 파병 군인이었던 자신의 역사를 직시하고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권력의 부당함에는 굽히지 않는 소신을 보이고,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따뜻한 자비를 베푼 삶이었던 겁니다.
승적 회복과 남겨진 울림
봉은사 주지 퇴임 이후에도 스님은 조계종 지도부와 정부를 향한 비판적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승 총무원장과 이명박 정권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며 갈등을 빚었고, 이 과정에서 국정원의 불법 사찰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2017년 승적 박탈 징계를 받았으나, 징계 무효 소송에서 1심과 2심 모두 승소하며 올해 초 승적을 회복했습니다.
스님의 입적 소식에 정치권과 불교계, 시민사회 곳곳에서 추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세상을 깨우치려 했던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고 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불교계의 큰 어른을 떠나보낸 슬픔을 표했습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스님을 큰 개혁가이자 민주지도자로 기렸습니다. 고인의 삶은 종교와 정치, 사회를 넘어 불의에 맞서고 연대하는 마음의 가치를 다시금 환기시켰습니다. 장례는 조계종과 법주사,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는 종교·시민사회장으로 25일 봉은사에서 영결식을 거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