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주라는 민망한 결과
스페이스X가 역대 최대 규모로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미래에셋증권은 글로벌 인수단에 유일하게 참여한 국내 증권사로서 7,600억 원 규모의 투자금을 모집했고, 박현주 회장까지 직접 나서서 강한 확신을 내비쳤는데요. 하지만 상장 직전 대표주관사인 골드만삭스로부터 배정 물량이 0주라는 통보를 받았고, 이로 인해 수많은 투자자가 아무런 배정 없이 청약금만 돌려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과 미국의 규제 간극에서 비례된 겁니다. 미래에셋증권은 SEC 미등록 브로커-딜러라서 미국인에게 판매할 수 없는 제약이 있었고, 이를 피하기 위해 사모 방식으로 펀드와 ETF를 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개방형 상품 특성상 투자자 명부에 미국인이 섞여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SEC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비슷한 조건의 브라질 방코BTG파투알은 은행 법인 단독 명의로 우선 물량을 확보한 뒤 사후에 국내 투자자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을 썼고, 이 덕에 배정에 성공했습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한 증권사의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보관 규모가 약 2,000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시장 영향력이 커졌는데, 정작 글로벌 IPO 배정 경쟁에서는 제도적 통로가 막혀 있는 셈이니까요.
서학개미는 달랐다
스페이스X에 대한 투자 열기는 IPO 배정 실패와 별개로 거세게 이어졌습니다. 상장일인 지난 12일, 국내 투자자들은 단 하루 만에 약 1조 2,000억 원을 순매수하며 해외 주식 역사상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엔비디아와 알파벳, 테슬라는 물론 반도체 레버리지 ETF까지 대거 매도하며 자금을 쏠림시키는 극단적인 포트폴리오 조정이 나타났습니다.
상장 첫날의 폭발적인 매수는 정부가 해외 투자금 환류를 위해 도입한 RIA 제도를 단숨에 무력화시켰습니다. RIA를 통해 회수했던 누적 매도액의 60% 이상이 스페이스X 매수로 다시 유출되었고, 핵심 유인책이었던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이 5월 말에 종료된 탓에 투자자들이 자산을 국내에 남겨 둘 명분도 사라졌습니다. 원·달러 환율은 RIA 도입 이후 오히려 상승하며, 정책의 환율 방어 효과도 미미한 수준에 그쳤습니다.
주가는 상장 후 4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시가총액이 아마존을 넘어 글로벌 5위에 올랐으나, 나흘 만에 3%에서 5% 하락하며 첫 약세를 보였습니다. 월가에서는 스타링크의 반복 매출 구조와 기술적 우위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과, 단기 수익성 대비 기업가치가 과도하다는 조정 가능성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머스크 생태계의 자금줄이 되나
시장의 관심은 이제 스페이스X 주식이 일론 머스크의 거대한 AI 생태계를 뒷받침할 재원이 될지 여부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스타링크는 마진율 63%를 기록하며 스페이스X 내부의 든든한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xAI나 테슬라의 피지컬 AI 사업은 막대한 자본을 요구하는데, 테슬라만 올해 자본지출이 전년 대비 3배 늘어난 250억 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스페이스X의 상장 자금이 이들 사업으로 흘러갈 경우, 주식 가치 희석과 공급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미 스페이스X는 코딩 플랫폼 커서를 주식교환 방식으로 합병하며 지분 희석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3사 합병설에 대해서는 개별 상장이 평가 프리미엄을 유리하게 만든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이번 0주 배정 사태는 앞으로 오픈AI나 앤트로픽 같은 대형 IPO를 앞둔 국내 자본시장에 큰 과제를 던졌습니다. 금융당국은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투자자 보호와 글로벌 경쟁력 사이에서 신중한 접근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한국 투자자들의 수요는 이미 세계적 수준인데, 이를 받아줄 제도적 파이프가 마땅치 않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