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하게 갈리는 내년의 하늘
내년 우리나라 산업의 하늘은 한쪽은 맑고, 다른 쪽은 먹구름이 낀 듯한 모습입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요 업종별 협회와 함께 내놓은 '2026년 산업기상도'를 보면, 인공지능(AI)의 강력한 영향 아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은 '쾌청'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배터리, 바이오, 자동차, 조선, 섬유패션 업종도 '대체로 맑음'을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석유화학, 철강, 기계, 건설 등 전통 제조업은 중국발 공급 과잉과 보호무역주의 확산, 고금리 등으로 인해 '흐림'으로 예보되었습니다. 2026년은 AI라는 강력한 바람이 산업 간 명확한 온도차를 만들어낼 한 해가 될 전망입니다.
AI 훈풍이 몰고 온 'R.E.D' 호황
반도체 산업이 내년 가장 강력한 성장 동력을 보일 것이라는 데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합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인프라 구축 경쟁이 과열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고부가가치 D램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내년 반도체 수출액은 올해보다 9.1% 증가한 약 1,800억 달러(약 265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디스플레이 산업도 AI의 간접적 수혜를 받을 전망입니다. AI가 탑재된 스마트폰, 노트북 등 전자기기의 사양 상향평준화로 전력 효율이 높은 OLED 패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며, 수출은 3.9%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와 함께 주목받는 것이 'R.E.D' 업종입니다. 반도체(RAM), 에너지저장장치(ESS), 디스플레이(Display)의 앞글자를 딴 이 분야는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배터리 산업은 AI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전력 소비 증가로 ESS 수요가 확대되고, 국산(K-)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모델 출시가 본격화되며 호조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AI의 직접적·간접적 영향권에 든 이들 산업은 단순한 회복을 넘어 새로운 성장 궤도에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대체로 맑음'을 유지하는 다른 성장동력들
AI 외에도 내년을 밝게 할 산업군이 있습니다. 바이오 산업은 국내 위탁개발생산(CDMO) 업체들의 대규모 설비 가동이 본격화되고, 미국 생물안전법(Bio SAFE) 시행에 따른 반사 이익으로 대형 위탁 계약 체결 가능성이 높아지며 양적·질적 성장을 동시에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현대차와 기아의 국내 전기차 신공장 가동이 본격화되며 생산과 수출이 소폭 증가할 전망입니다.
조선 산업은 친환경 선박에 대한 세계적인 수요와 미국의 LNG 수출 확대로 인한 운반선 발주 증가에 힘입어 수출이 8.6%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섬유패션 산업도 K-콘텐츠 확산과 원화 약세 효과로 수출 증가가 기대되는 상황입니다. 이들 업종은 각자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AI 특수와는 별개로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습니다.
중국의 그림자와 대외 불확실성에 가려진 업종들
한편, 석유화학, 철강, 기계, 건설 업종의 내년 전망은 어둡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중국입니다. 석유화학과 철강 산업은 중국의 대규모 설비 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과 저가 물량 공세에 직면해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과 EU의 수입 규제 강화까지 더해져 수출 경쟁력이 크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특히 철강은 미국의 통상 보호조치와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로 인해 수출 시장이 좁아질 우려가 있습니다.
기계 산업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가능성이라는 최대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습니다. 건설기계나 변압기 등이 철강 파생제품으로 분류되어 높은 관세를 적용받을 경우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건설 산업은 고금리 지속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심사 강화, 각종 규제로 인해 민간 수주 증가 폭이 제한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업종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이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러한 양극화된 전망 속에서도 한국 제조업 전반이 직면한 공통 과제를 지적했습니다. 바로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 상승에 대한 대비와 AI 시대에 발맞춘 혁신입니다. 기업의 공격적인 AI 투자와 실험, 정부의 규제 혁신과 인센티브 체계 마련이 함께 이루어져야 내년이 단순한 '흥망성쇠'의 해가 아닌, 미래를 준비하는 전환점의 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