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참사 뒤에 선 사람들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승 2패의 성적을 거뒀던 한국 대표팀이 32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이 여파가 가라앉기도 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움직였고, 지난 7월 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K-축구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과 박지성 FIFA 분과위원회 위원이 공동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이영표, 박주호 해설위원 등 전 국가대표 출신 축구인들이 대거 참여했고, 유승민 대한체육회 회장, 김승희 축구협회 전무이사, 조연상 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 유영근 변호사, 김대희 교수 등 체육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합류했습니다.
그동안 외부의 비판자로 머물렀던 박지성이 직접 판을 짜겠다는 점에서 이번 위원회의 성격이 뚜렷합니다. 평소 축구협회 지도부의 인재 활용 미흡을 강하게 지적해 온 박지성이 개혁의 전면에 나선 것 자체가 강한 메시지입니다.
월드컵 이후 쌓인 숙제들
위원회 출범의 배경에는 단순한 성적 저조를 넘어선 문제가 있었습니다. 체코전 승리 이후 개최국 멕시코에 패했고, 남아공전에서 충격적인 졸전을 펼치며 일제히 비난의 대상이 됐습니다. 현지에서 홍명보 감독이 사퇴했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감독과 협회를 직접 비판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손흥민과의 갈등설과 선수단 내분설, 정몽규 전 회장의 사퇴까지 겹치며 축구협회는 전방위적인 신뢰 추락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문체부는 이미 축구협회에 대한 특별감사를 예고한 상태입니다. 혁신위원회는 거버넌스 재정립, 유소년 선수 육성 체계 강화, 첨단 기술 시스템 도입을 주요 과제로 삼았습니다. 단기적으로는 협회장 선거 실시와 집행부 재구성, 장기적으로는 선수 육성 비용의 경제적 부담을 해소하고 학습권과 건강권을 보장하는 정책 마련에 집중할 방침입니다. 현재 간선제로 운영되는 협회장 선거 방식 개선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만큼, 정관 개정이라는 상당한 시간과 진통이 예상됩니다.
FIFA라는 벽, 어떻게 넘을까
가장 큰 숙제는 FIFA와의 관계입니다. FIFA는 회원국 협회의 독립적 운영을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어, 정부 기관이 협회 집행부에 깊이 관여할 경우 국제대회 출전 금지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2015년에도 정부 개입으로 회원국이 징계를 받은 전례가 있어 신중론이 제기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박지성의 상징적 가치가 부각됩니다. 인판티노 FIFA 회장이 박지성을 '전설적 인물'로 높이 평가해 온 만큼, 그가 정부와 FIFA 사이의 소통 가교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은 확보하면서도 FIFA의 정치적 중립 원칙은 침해하지 않는 정교한 선을 찾아야 하는 셈입니다.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이번 위원회가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그리고 FIFA와의 줄다리기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