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살릴 법안인가, 또 다른 족쇄인가
2027년 5월 시행을 앞둔 개정 의료분쟁조정법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9월 16일 국회도서관에서는 공청회가 열렸는데요. 핵심 쟁점은 법안의 '12대 중과실' 기준이 과연 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느냐였습니다.
법의 취지는 분명합니다. 필수의료에 대한 형사·민사 리스크를 낮춰 의료진이 고위험 진료에 나서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전문가들 평가는 정반대입니다. 중과실을 법률로 유형화한 방식이 오히려 법적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겁니다.
현장이 외면한 12가지 기준
서종희 연세대 교수는 중과실 판단은 원래 사법부 영역이라며, 행위 중심의 유형화가 의료 현장의 구체적 사정을 담아내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고위험 필수의료일수록 과실 판단이 모호해, 유형화가 예견 가능성을 오히려 낮춘다는 설명입니다.
배장환 좋은삼선병원 소장은 수혈과 수술 규정이 겹치는 등 법안 구성이 엉성하고, '중대한 영향' 같은 표현이 모호하다고 비판했습니다.
법조계의 우려도 만만치 않습니다. 황용남 수원고법 판사는 12개 유형 문구 하나하나가 법적 다툼의 대상이 되고, 형사 특례 조항의 위헌성 논란도 가능하다고 경고했습니다. 하위법령 보완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날 위험도 제기됩니다.
개인 책임에서 공적 보상으로
서종희 교수는 개인 책임 강화 대신 사회보험 방식의 공적 보상 체계로 전환해야 방어적 진료와 소송 자원 불균형을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은경 순천향대 교수는 의료사고 원인을 시스템 차원에서 조사하고, 뉴질랜드처럼 공적 보상기금과 독립적인 환자안전청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협의체를 통해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마련하고, 연구용역으로 중과실과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범위를 구체화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은 법의 명료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사법 리스크는 줄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쟁점은 법의 취지가 아니라, 그 취지를 현장에서 작동하게 만드는 문구의 정밀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