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조 기금의 정체
정부가 2027년 예산안에 신설한 미래대응기금이 재정 논쟁의 중심에 섰습니다. 규모는 162조원에 달하는데요. 반도체 호황으로 확보한 추가 세수를 단기 소비성 지출이 아니라 신산업에 투자해 미래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게 취지입니다.
그런데 실제 구성은 취지와 상당히 다릅니다. 기금 사업비 45조4000억원 가운데 청년미래적금, 지방국립대 장학금 같은 현금성 지원이 15조5000억원으로 34.1%를 차지합니다. 출자·융자·시설장비를 합친 자본 축적형 지출은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한 겁니다. 미래 산업에 투자한다는 기금이 정작 현금성 지원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지방 재정이 흔들린다
재원 마련 방식도 논란입니다. 추가 세수와 함께 지방교부세 모수 조정이 동원되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의 반발이 거셉니다.
경남도의회는 교부세 감소와 자체 수입 정체, 국고보조사업 매칭 부담이 겹쳐 지방 재정과 투자 여력이 줄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보전 방안의 법제화와 재원 구조 재검토, 대규모 재정 개편 시 사전 동의·협의 체제 구축을 요구했죠.
경북도도 비슷한 입장입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과 만난 자리에서 투자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지방의 자주재원을 줄여 중앙이 재분배하는 구조는 지방분권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경북도는 개편이 이뤄지면 보통교부세가 4조5000억원 넘게 줄어 도민 서비스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고, 지방교부세율 인상을 건의했습니다. 중앙과 지방이 재원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겁니다.
남은 숙제
제도적 한계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박정흠 재정제도분석팀장은 기금의 30% 범위 변경 재량과 세입·세출 외 처리가 국회 통제를 약화시킨다고 비판했습니다. 성과 평가와 환류 장치가 없어 세수가 줄면 대응할 규칙조차 없다는 겁니다.
박승준 대구대 교수는 추경 없이 기금 여유 자금을 쓰겠다는 방침이 명문화되지 않았고, 기금과 추경의 역할 분담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분배·기후 대응 분야가 우선순위에서 밀려 보건·복지·고용, 환경 분야 비중이 2030년까지 낮아질 것이란 경고도 나옵니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은 세입 증가가 지출 확대를 부추긴 만큼, 세수가 줄었을 때의 지속 가능성도 관건입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명분과 지방 재정, 국회 통제라는 현실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일이 남은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