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의 4심제를 둘러싼 논란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재판소원법’이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습니다. 이른바 ‘4심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이 법안과 함께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대법관 증원법’도 함께 처리되면서, 사법 시스템을 뒤흔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이 법안들이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강화하고 국민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필수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야당과 법원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핵심 쟁점은 확정된 사법 판결을 다시 열 수 있게 하는 것이 과연 헌법이 정한 3심제의 근간을 훼손하는지 여부입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서영교 의원은 재판소원 도입이 37년 만에 법원 재판으로 인해 침해된 기본권에 대한 구제 길을 열었다고 강조합니다. 현행 헌법소원 제도는 행정처분이나 법률은 대상이 되지만, 법원의 재판 자체는 예외였기 때문이죠. 반면 국민의힘과 대법원은 일관되게 위헌성을 주장합니다. 대법원은 공식 의견서를 통해 헌법 제101조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규정하며 재판 불복의 한계를 명시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입법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여야의 첨예한 대립과 ‘이재명 구하기’ 논란
법사위 회의장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오갔습니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헌법 공부를 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는데요. 민주당은 이 제도가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오랜 논의 끝에 나온 결과이며, 헌법재판소가 과거 여러 차례 합헌 판결을 내렸다고 반박합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 법안 처리 속도와 시점에 강한 의혹을 제기합니다. 나경원, 조배숙 의원 등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판결 직후 법안이 발의되고, 하루 만에 소위원회를 통과한 점을 지적하며 ‘피고인 구하기’를 위한 정치적 조치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법원 내부의 우려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기우종 법원행정처 차장은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소송 당사자의 생활이 망가질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경고했습니다. 그는 독일의 사례를 들며 재판소원의 낮은 인용률과 고비용, 저효율성을 지적했습니다. 경제적 능력이 있는 당사자가 소송을 장기화하는 전략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도 국민이 ‘소송 지옥’에 빠질 수 있다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동의한다고 답변하며 법원의 공식적인 우려를 대변했습니다.
법원의 반발과 불확실한 향후 전망
대법원의 반대는 단호합니다. 재판소원 도입이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기업 활동에 불확실성을 초래하며, 결국은 대부분의 사건에서 재판 종결만 늦추는 ‘희망고문’에 그칠 수 있다는 게 주요 논지입니다. 또한 대법관 증원법에 대해서는 하급심 판사들이 대법원으로 이동하면서 지방법원의 공백이 생기고, 재판 지연이 심화될 수 있다는 내부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라는 비판까지 더해지며, 논란은 사법권 전체의 근본적인 역할에 대한 논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법안들은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타협 없이 시간표대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통해 저지할 것을 예고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정치적 공방으로 인해 아동수당 상향,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등 60여 건의 대기 중인 민생법안 처리까지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법 개혁을 표방한 두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그것이 진정으로 국민의 권리 구제를 강화할지, 아니면 끝없는 법적 다툼과 정치적 갈등의 서막이 될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