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를 지운 광주경찰, 무엇이 두려웠나
이채원 양을 살해한 장윤기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핵심 증거를 고의로 누락하고 범죄 동기를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광산경찰서 수사팀이 케이블타이와 USB, 메모리카드, 성인 인형까지 발견하고도 압수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는데요. 이들이 의도적으로 강간살인 혐의를 빼내려 했다는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습니다.
수사팀은 장윤기의 차량과 원룸을 압수수색하면서 다량의 물증을 확보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케이블타이 등을 그대로 두었고, 훼손된 리얼돌은 DNA 채취만 한 뒤 방치했습니다. 더 심각한 건 압수수색 다음 날, 현직 경찰 간부인 장윤기의 아버지에게 차량 열쇠와 원룸 비밀번호를 넘겼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아버지는 리얼돌을 폐기하고 차량 내 물품을 정리하며 증거를 인멸할 수 있었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광주경찰청 과학수사계가 성적 동기 개입 가능성을 검토하라는 보고서를 보냈음에도 수사팀은 이를 기록에서 제외했습니다. 차량 뒷문이 열려 있었다는 CCTV 분석 보고 역시 수사팀장이 불분명하다며 삭제를 지시한 것으로 파악되었는데요. 검찰은 이를 강간 등 살인을 입증할 주요 증거로 보고 있어 수사 축소 의혹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계획범행'을 외면한 수사팀
장윤기는 그동안 피해자를 우연히 본 뒤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특별수사단이 포렌식을 통해 확인한 결과, 장윤기가 범행 전부터 이채원 양을 일방적으로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정황이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당시 수사팀은 이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도 추가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사건을 검찰에 넘겼습니다.
수사팀장이었던 박 경감은 팀원들에게 사건을 성적인 방향으로 몰아가지 말라고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는 일반 살인죄로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의도로 읽히는 대목입니다.
남양주 사건 이후, 책임 회피가 부른 비극
이런 부실 수사의 배경에는 경찰 조직의 집단적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3월 남양주에서 발생한 김훈의 스토킹 살해 사건 이후, 경찰은 안이한 초동 대응으로 대대적인 징계와 전수조사를 받았습니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까지 경찰을 공개적으로 질타할 정도여서 조직 전체가 비상 체제에 들어갔죠.
이런 상황에서 5월에 발생한 장윤기 사건을 마주한 광산서 지휘부는 관계성 범죄로 분류될 경우 또다시 문책이 따를 것을 우려했습니다. 특별수사단은 당시 광산서장이 수사팀에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며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는데요. 결국 책임 회피를 위한 조직적 움직임이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을 덮으려 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습니다.
검찰은 광주경찰청 지휘부를 상대로 세 번째 압수수색을 벌이며 윗선 개입 여부를 쫓고 있습니다. 경찰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자체 보완 수사의 시간을 달라고 하지만, 브리핑 직전에 이루어진 강제 수사 탓에 검경 간의 갈등도 함께 심화되는 양상입니다. 특별수사단은 부당한 지시나 청탁이 있었는지 중점적으로 수사하고 있으며,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검토할 방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