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가면을 내던졌다"는 북한의 분노
지난 10일 브뤼셀에서 채택된 한국과 유럽연합의 공동성명을 두고 북한이 날 선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 외무성은 한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하며 집권자가 평화의 가면을 내던졌다고 강하게 비난했는데요. 성명에 담긴 북러 불법 군사협력 규탄과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불인정 내용이 발단이 된 것입니다. 북한은 이번 성명을 명백한 주권 침해이자 엄중한 적대 행위로 규정하고 대적 원칙이 불변하다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북한은 비핵화는 이미 종결된 사안이며 핵보유국 지위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습니다. 특히 외무성 산하에 신설된 10국 대변인 명의로 나온 담화는 한국을 미국의 단검이자 우크라이나 공범으로 묘사하며 남북 관계를 영원히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굳히려는 태도를 보였죠. 이러한 공세는 최근 북한이 시진핑 주석 방북을 통해 대외적 지위를 과시하고, 러시아와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 2주년을 맞아 두만강 교량 완공식 등을 예고한 가운데 나온 것입니다. 북중러 밀착을 배경으로 한반도 긴장을 넘어 글로벌 차원의 진영 대결을 부추기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유럽을 향한 외교, 본질은 연대의 확대
이재명 대통령의 유럽 순방은 북한과의 대립만으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현재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한국은 유럽연합 및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중견국과의 협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가운데 규칙에 기반한 다자주의를 지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데요. 이번 순방의 핵심은 가치를 공유하는 중견국들과의 연대를 구축하며 외교적 운신의 폭을 넓히려는 전략에 있습니다.
EU와의 정상회담에서는 철강 관세와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통상 현안을 다뤘고, 이탈리아와는 인공지능과 방산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추진 등 다자무역 체제로의 연결고리를 넓혀가며 트럼프 시대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생존 공간을 확보하려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바티칸에서의 평화 메시지도 이런 맥락에서 한반도 안정성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행보로 읽힙니다. 특히 EU와의 비밀정보보호협정 협상 개시는 방산과 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을 넓히려는 구체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원칙과 평화 사이에서 시험대에 선 외교
한편 공동성명의 강경한 문구를 두고 내부적인 해석의 차이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상호 존중과 단계적 비핵화 협상이라는 평화공존 기조가 공식 외교 문서에서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원칙은 지키되 상대의 대화 입구를 넓히는 언어가 필요했는데, 오히려 북한이 가장 민감해하는 핵과 군사협력 문제를 병렬 배치해 문턱을 높였다는 비판입니다. 강경 원칙과 대화의 여지를 동시에 유지하는 외교적 문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청와대는 이번 성명이 기존의 국제적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며 긴장 완화 노력과 상치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EU 역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지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요. 하지만 북한이 이를 대결 선언으로 규정한 만큼, 앞으로 원칙을 지키면서도 위기를 관리하는 정교한 언어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북중러 연대가 공고해지는 상황에서 한국이 평화와 안보 두 축을 모두 잡아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