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을 실은 버스의 마지막 운행
부산의 겨울을 물들였던 특별한 버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2006년 한 버스 기사의 작은 아이디어로 시작된 ‘산타버스’가 최근 화재 위험 관련 민원을 이유로 올해 운행을 중단했습니다. 12월이면 빨간 코와 커다란 눈을 단 버스가 거리를 누비며, 특히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부산에서 아이들에게는 산타클로스를 만난 듯한 기쁨을 선사했죠. 그런데 지난 7일 부산시에 접수된 한 통의 민원이 이 모든 것을 멈추게 했습니다. 버스 내부의 솜이나 비닐 등 가연성 소재 장식이 화재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부산시는 해당 버스 회사에 장식 철거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고, 187번, 508번 등 4개 노선의 산타버스와 인형 버스(41번)의 모든 장식이 철거됐습니다. 9년간 산타버스를 직접 꾸며 운영해온 주형민 기사는 SNS를 통해 “아이들이 기다렸을 텐데… 미안하다”는 아쉬운 심정을 전했습니다. 시민들의 반응은 ‘세상이 각박해졌다’는 한탄으로 가득했고, 크리스마스의 낭만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으로 이어졌습니다.
한 기사의 정성에서 도시의 명물로
산타버스의 시작은 2006년, 퇴직한 김이순 기사의 발상에서 비롯됐습니다. 연말 분위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 버스 내부를 크리스마스트리로 꾸민 것이 시초였죠. 승객들의 반응이 뜨거웠고, 이 소식은 입소문과 SNS를 타고 빠르게 확산됐습니다. 이후 다른 기사들의 자발적인 동참과 회사 측의 지원으로 노선은 점차 늘어났고, 부산을 넘어 김포, 전주, 천안 등 전국으로 그 열기가 퍼져 나갔습니다.
산타버스는 단순한 장식이 아닌, 시민 참여형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새벽부터 차고지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 됐고, 온라인에는 산타버스 탑승 인증 사진이 넘쳐났죠.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마스크를 쓴 산타 그림으로 시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한 기사의 작은 실천이 도시 전체의 따뜻한 추억과 상징이 된 셈입니다. 할로윈 버스, 벚꽃 버스 등 다양한 테마 버스가 등장한 것도 이 같은 영향이 컸습니다.
안전 규정과 동심 사이에서 내린 선택
산타버스 운행 중단의 직접적인 계기는 안전 문제에 대한 민원이었지만, 사실 버스 내부 장식은 현행 규정상 원칙적으로 제한되는 사항입니다. 그간 버스 회사와 부산시가 좋은 취지와 시민들의 열렬한 반응을 감안해 눈감아 주며 운행을 지원해왔다는 배경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관용’이 공식적인 안전 기준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이었죠.
부산시 관계자는 “승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불가피하게 운행 중단을 결정했다”며 “대중교통에서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번 결정은 특정 민원 하나만이 아닌, 잠재적 위험에 대한 제도적 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된 결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많은 시민과 해당 기사들은 ‘위험하다면 안전하게 지원해주는 방향’을 모색할 수는 없었는지 아쉬움을 표합니다. 단순한 철거보다는 안전 기준을 맞춘 장식 재료를 사용하거나, 화재 예방 장치를 추가하는 등 대안 마련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남겨진 과제와 새로운 가능성
산타버스의 운행 중단은 단순한 한 시즌의 이벤트가 사라진 것을 넘어, 공공 공간에서의 자발적 문화 창조와 안전 규제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숙제를 던집니다. 운영 기사는 퇴직 후 개인 버스를 구입해 산타버스를 다시 만들겠다는 꿈을 밝혔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지와 재정에 맡겨진 일입니다.
시민들의 강한 애정과 아쉬움을 고려할 때, 공공 차원의 재검토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연기관 버스가 아닌 전기 버스에 한시적으로 장식을 허용하거나, 난연 소재로 인증된 장식품만을 사용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방안 등이 논의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창의성과 동심을 북돋는 문화적 가치를 어떻게 현명한 안전 관리와 결합시킬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20년 가까이 이어진 부산 산타버스의 이야기는 잠시 멈췄지만, 그 정신과 시민들의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안전과 환상, 규정과 자발성 사이에서 더 나은 해법을 찾는 과정이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년 12월, 더 안전하고 따뜻한 모습으로 부산 거리를 다시 누빌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