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1년, 다시 모인 광장과 잊지 않는 기억

KM한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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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 수정 · 2025년 12월 4일 오전 10:49

발행: 2025년 12월 4일 오전 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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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선포 1주년을 맞아 국회 앞 광장에는 다양한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1년 전의 긴박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민주주의 수호를 재확인하는 한편, 사건의 법적·정치적 청산과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집회는 축제 같은 연대의 장이기도 했지만, 맞은편에서는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함께해 여전히 남아 있는 사회적 갈등을 드러냈습니다. 고요해진 도시의 풍경은 혼란의 시간을 견뎌낸 일상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분노와 촛불, 그리고 지난 1년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이라는 단어가 온 나라를 뒤흔들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선포된 계엄으로 국회는 봉쇄되고, 광장에는 시민들의 함성과 촛불, 분노와 절망이 가득 찼죠. 그로부터 정확히 1년이 지난 지난 3일, 영하권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 여의도 국회 앞으로 시민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목도리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내란 청산’ 팻말을 든 모습은 1년 전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합니다. 한때 무장한 계엄군이 배치됐던 공간을 이제 시민들이 채우고 있는 풍경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집회에 참여한 한 시민은 1년 전 계엄군이 침입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직접 손팻말을 만들어 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1년 만에 꺼내 든 그 팻말과 ‘국민이 주인이다’라는 대형 깃발, 응원봉들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그날의 공포와 연대를 기억하겠다는 의지의 표상이었죠. 광장에서는 에스파의 ‘위플래시’가 떼창으로 울려 퍼지며, 축제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2시간 반의 긴박했던 시간들

1년 전 그날 밤의 시간은 초단위로 긴박하게 흘렀습니다. 계엄이 선포된 지 불과 2시간 반 만인 새벽 1시, 국회에서는 재석 의원 190명 만장일치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습니다. 당시 국회 출입문이 봉쇄되는 가운데,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한 수십 명의 의원들이 담장을 넘어 진입해야 했던 사연은 지금도 생생히 전해집니다. 이 짧지만 강렬했던 시간은 국가의 헌정 질서가 극한의 위기에서도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순간이었습니다.

계엄 해제 담화가 발표된 후, 국회와 중앙선관위에 투입됐던 군인들은 속속히 철수했습니다. 한 기자는 철수하는 군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안부를 전했는데, 그 군인의 어깨가 ‘거의 강철 같더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 상황 자체가 모든 이에게 강렬한 신체적, 정신적 긴장을 안겼죠. 해가 뜨자 시민들은 환호했지만, 그 이면에는 해소되지 않은 충격과 의문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1년이 지난 지금, 광장에 모인 목소리는 단순한 추모나 기념에 그치지 않습니다.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는 구호에서 드러나듯, 많은 시민들은 사건의 정치적, 법적 청산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는 선언문을 통해 인권, 민주주의, 차별 없는 삶 등 당시 요구됐던 근본 과제들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신속한 재판 마무리와 함께 사회 전반의 개혁을 촉구하며, 그날의 연대가 단지 과거의 승리가 아닌 미래를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움직임과는 별개로, 국회 건너편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함께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단체들이 모여 1년 전 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맞집회를 연 것이죠.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이 계엄 선포에 대한 사과에 나선 것을 두고 ‘배신자’라며 비난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습니다. 이 같은 대립 구도는 비상계엄이라는 사건이 한국 사회에 남긴 갈등의 깊이를 단면적으로 보여줍니다.

고요해진 도시와 남은 불빛

집회가散去한 밤, 여의도 국회 앞은 다시 고요함을 찾습니다. 기자가 내려다본 서울의 야경은 건물들의 반짝이는 불빛처럼 차분하고 안정적이었습니다. 정치적 대립과 광장의 외침이 휘몰아쳤던 1년이었지만, 도시의 삶은 묵묵히 그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이 차분한 풍경은 혼란 속에서도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일상을 지켜냈음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12·3’은 이제 하나의 역사적 날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의미는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해석되고 논의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민주주의를 지켜낸 승리의 날로, 또 다른 이에게는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죠. 1년이 지난 오늘, 광장에 다시 모인 사람들과 고요해진 도시의 불빛은 같은 시간을 두고도 다르게 감지되는 사회의 균열과 회복력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일의 서울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날의 기억과 오늘의 목소리가 앞으로의 길을 만드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