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보지 않고도 계약하는 전세 시장
서울 아파트 전세 시장이 매물 부족으로 인해 집을 보지 않고 계약하는 사례마저 빈번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전셋값은 2015년 이후 약 10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고, 올해 누적 상승률은 5.1%로 매매가 상승률과 비슷한 수준까지 치솟았습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건 신규 계약과 재계약 간의 보증금 격차가 벌어지는 이른바 '이중가격' 현상입니다. 직방 분석 결과 서울 전용 84㎡ 아파트의 경우 신규 계약 보증금이 재계약보다 최대 8,000만 원까지 높게 나타났습니다. 신규 계약에는 현재 시세가 즉각 반영되는 반면, 재계약은 계약갱신요구권으로 인해 임대료 증액이 5% 이내로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격차는 세입자들의 선택을 크게 바꾸고 있습니다. 서울의 재계약 비중은 지난 1월 47.4%에서 6월 55%로 상승하며, 4월 이후 3개월 연속 신규 계약 비중을 웃돌았습니다.
공급 감소와 규제가 쌓인 주거 부담
전세난의 배경에는 신규 입주 물량 감소가 있습니다.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지난해 3만 2천여 가구에서 올해 1만 7천여 가구로 줄었고, 내년에는 1만 3천여 가구까지 더 감소할 전망입니다. 고금리와 공사비 급등, 부동산 PF 부실 여파로 인허가와 착공이 위축된 결과입니다.
여기에 정부의 대출 규제가 더해졌습니다. 작년 10·15 대책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지정되고 실거주 의무가 강화되면서 갭투자가 어려워졌고, 1주택자 전세대출 한도 축소와 DSR 규제로 임대인들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전세 공급은 줄고 월세로 전환되는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되면서 실수요자의 주거비 부담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아파트를 떠나는 수요와 비아파트로의 이동
아파트 전세 시장의 높은 벽은 수요를 주변으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서울의 높은 전세 부담을 느낀 세입자들이 교통 접근성이 좋은 경기 광명·화성 등으로 이동하면서 전세난은 수도권 전체로 확산되는 양상입니다. 특히 광명시는 8.11%, 화성시 동탄구는 8.03%의 전셋값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아파트 대안으로 빌라와 연립주택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전국 비아파트 거래량은 전년 동기 대비 16.1% 증가했고, 서울 빌라 전셋값은 3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다만 비아파트의 신규 착공 물량 역시 과거 평균 대비 20~30% 수준에 그쳐 공급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신규 공급 확대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단기간 내 수급 불균형 해결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셋값 강세가 이어지는 동안 신규 계약과 재계약 간의 보증금 격차, 그리고 비아파트로의 수요 이동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