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이 전달되던 날
2023년 3월 17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일본 순방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당시 당대표 당선인)도 맞이 행사에 참석했다. 그날, 김 의원의 배우자 이모 씨는 로저비비에 클러치백 한 점을 김건희 여사에게 전달했다. 가격은 267만 원. 함께 건넨 감사 편지에는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 사실은 2025년 7월, 민중기 특검팀이 김 여사 자택을 압수수색하면서 드러났다. 가방 두 개와 함께 발견된 편지가 결정적 증거였다. 특검은 구매 내역과 결제 내역까지 추적했다. 가방 대금은 김기현 의원의 세비 계좌에서 나갔고, 편지에 적힌 날짜는 3월 17일이었다. 국회 차량 출입 기록 등을 종합해 김 의원 부부가 그날 오전 국회에서 만난 정황도 포착했다.
2년 9개월 만에 밝혀진 이 사건은 12월 27일, 특검의 기소 결정으로 이어졌다. 민중기 특검팀은 김기현 의원과 배우자 이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특검이 지난 7월 출범한 이후 처음 내린 형사처분이다.
청탁금지법이 적용된 이유
특검이 뇌물죄가 아닌 청탁금지법을 적용한 데는 이유가 있다. 뇌물죄는 금품 제공과 공무원의 직무 사이에 대가성이 입증돼야 한다. 반면 청탁금지법은 공직자(또는 그 배우자)에게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주기만 해도 처벌할 수 있다. 특검은 김기현 의원의 가방 제공이 김건희 여사의 지위(대통령 배우자)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김 의원이 당대표 당선 직후 대통령 부인에게 고가 명품을 준 행위 자체가 직무 관련성을 충족한다는 것이다.
특검은 “공당 대표가 당대표 당선에 대한 대가로 대통령 부인에게 명품 가방을 제공한 권력형 비리”라고 규정했다. 또한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하고 정당 민주주의를 훼손한 중대 범죄”라고 강조했다.
다만, 대가성까지 입증하기엔 증거가 부족했다. 김 여사가 실제로 김 의원의 당선에 관여했는지, 그 대가로 가방을 받았는지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이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뇌물 수수 혐의는 기소하지 않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로 사건을 이첩했다. 추가 수사를 통해 대가성 여부가 규명될지 주목된다.
“묻지마 기소” vs “정치 타락”
김기현 의원은 기소 결정 직후 성명을 내고 “특검이 기소 실적을 올리기 위한 묻지마 기소”라고 반발했다. “가방은 사회적 예의 차원이었을 뿐,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며 “재판에서 무죄가 입증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배우자 이씨도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일각에선 특검의 수사가 정치적 보복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정당 민주주의의 타락을 상징하는 사건”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박경미 민주당 대변인은 “대통령실이 당대표 경선에 개입하고 명품백을 동원한 것은 국기문란”이라고 지적했다.
특검은 28일 수사를 마무리하고 29일 종합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김기현 부부의 재판은 내년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부부에 대한 수사는 경찰로 넘어가 앞으로 더 깊이 파헤쳐질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권력과 명품백’의 상징적 케이스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