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만에 터진 1조 3000억원의 기록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내 증시가 요동치던 지난주,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 조달 행보가 이례적으로 빨라졌습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의 개인 마이너스통장 잔액이 사흘 만에 약 1조 3000억 원이 늘어난 겁니다. 3월 5일 기준 40조 7227억 원을 기록한 이 수치는 2020년 11월 이후 5년 3개월 만에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고, 월말 기준으로는 2022년 12월 이후 3년 2개월 만의 최고치에 해당합니다. 증시의 극심한 변동성 속에서 개인들이 은행 신용대출을 급히 끌어다 쓴 모습이 뚜렷하게 포착된 셈이죠.
이 변화는 주택담보대출 흐름과 뚜렷한 대비를 이룹니다. 같은 기간 5대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오히려 감소한 반면, 일반신용대출과 마통을 합한 신용대출 잔액은 1조 3945억 원이나 증가했습니다. 예금 시장에서도 자금 이탈이 동반되었는데요, 정기예금에서 2조 7872억 원, 요구불예금에서 8조 5993억 원이 빠져나갔습니다. 은행권 관계자들은 이 같은 움직임의 상당 부분이 증권사 계좌로의 자금 이체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롤러코스터 장세가 부른 '저가 매수' 심리
이런 대규모 자금 이동의 직접적인 배경에는 중동 갈등으로 인한 증시의 낙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코스피가 이틀간 18%가 넘게 급락하는 모습을 보이자,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이를 저가 매수의 기회로 판단한 겁니다. ‘포모(FOMO, 놓칠까 봐 두려운) 심리’에 휩싸여 빚을 내서라도 주식을 사들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죠. 실제로 증시가 가장 크게 하락했던 날에는 하루 만에 마통 잔액이 9743억 원이나 불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빚투’ 현상은 은행권을 넘어 증권사 신용거래에서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증권사 신용융자 잔고는 2월 11일 이후 12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33조 6945억 원에 달했습니다. 신용공여 한도가 포화 상태에 이른 일부 증권사는 신규 신용거래융자 거래를 일시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시장 변동성이 커질수록 오히려 레버리지를 활용한 공격적 투자가 늘어나는, 일종의 역설적 국면이 펼쳐지고 있는 겁니다.
쌓이는 우려와 금융당국의 경계
투자 열기 뒤편에는 상당한 위험 요인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가장 큰 우려는 주가 추가 하락 시 발생할 수 있는 연쇄적 부실입니다. 신용융자나 마통을 활용한 투자자는 주가가 떨어지면 담보 가치가 줄어들어 증권사나 은행으로부터 ‘반대매매’나 ‘추가 담보 요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시장이 2~3일 더 급락할 경우 대규모 신용불량자가 속출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죠. 고금리 환경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투자 실패는 상환 부담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에 금융당국도 경계 태세를 높이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주요 증권사에 신용거래융자 규모와 중동 사태에 따른 시장 전망 등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직접 점검에 나섰습니다. 또한 중동 상황에 따른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금융시장을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당국은 개인 투자자들의 차입 투자가 가계부채를 악화시키고 금융 시스템 전체의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아직 외국인 투자자들은 아시아 시장에서 자금을 빼는 흐름을 보이고 있어, 국내 개인들의 적극적 매수와는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단기 수익을 좇는 과도한 차입 투자보다는 신중한 자산 관리가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