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칼날 앞선 막판 조율
미국이 한국의 대미 투자 이행 속도가 너무 늦다며 관세 인상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합의된 15% 상호관세를 파기하고 25%로 환원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요. 이에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16일 급거 워싱턴을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면담하며 1호 투자 프로젝트 발표를 앞당기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에너지 분야를 1호 사업으로 검토하며, 텍사스주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을 유력 후보로 두고 막판 쟁점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된 메모리 반도체 투자 요구설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는데요. 산업부는 기업들의 메모리 반도체 미국 투자 계획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사실 이번 협상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가을 3,5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하고 관세를 15%로 낮췄지만, 반년이 넘도록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미국은 무역법 301조를 들어 강제노동 관련 12.5% 관세를 이미 부과했고, 이달 말 과잉생산 관련 추가 관세까지 나올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합산 관세율이 15%를 넘으면 지난 합의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통상 수장 공백과 기업들의 셈법
협상의 막바지에 통상 라인의 공백이 불안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러트닉 장관의 독촉 이메일이 도착한 직후인 지난 15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직권면직되면서 실무 총책임자 자리가 비었습니다. 물론 산업부는 박정성 통상차관보 중심의 비상 업무체계를 가동하며 공백을 메우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향해 메모리 반도체 전공정 시설의 미국 내 구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론은 한국 기업들이 후공정 위주로 투자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했는데요. 문제는 미국에서 공장 한 곳을 짓는 데 200억~300억 달러가 들고, 건설 비용이 국내의 두 배에 달한다는 점입니다. 거기다 핵심 기술 유출 우려까지 겹쳐 기업들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370억 달러, SK하이닉스는 38억 7천만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 투자를 이미 진행 중인 상황에서 추가 메모리 투자는 현실적으로 부담이 큽니다. SK하이닉스는 최태원 회장이 전공정 추가 건설 의향을 밝혔지만 적합한 후보지를 찾기 어렵다는 고충을 토로했고, 삼성전자는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중간선거 앞 다급해진 워싱턴
미국이 이토록 거세게 압박하는 데는 11월 중간선거라는 정치적 시계탑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우려로 내수 부양책을 쓰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경기를 끌어올리려는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미국은 일본이 벌써 6개 프로젝트를 확정 지은 것과 비교하며 한국을 역대 가장 느린 협상가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불만이 안보 분야까지 번졌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한미연합훈련이 갑작스럽게 축소된 것이 대미 투자 지연에 대한 불만의 표시라는 해석입니다. 영 김 하원 의원 등 미국 측 인사들은 한국 정부의 대우에 우려를 표하며 동맹 관계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향후 전망은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 1호 프로젝트 발표 여부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에너지 분야 중심의 1호 사업이 윤곽을 잡아가고 있지만, 관세 15% 상한선을 지키기 위한 추가 관세 방어와 메모리 반도체 투자 압박이 어떻게 타결될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입니다. 정부는 기업의 자율적 투자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동맹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어려운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