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땅에서 기다리는 미군 유해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대화를 제의한 가운데,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이 북한 내 미군 유해 발굴을 위한 준비 태세에 들어갔습니다. 하와이 진주만-히캄 합동 기지에 있는 DPAA는 여건이 무르익는 대로 북한에 팀을 투입할 수 있도록 지시받은 상태인데요. 팀이 언제든 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대기하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구체적으로 DPAA는 장진호 동서쪽과 청천강 전투 지역, 구장과 운산, 그리고 압록강 지역 포로수용소 등을 발굴 희망 지역으로 꼽았습니다. 이들 지역은 실종자가 많이 발생한 곳으로, 발굴이 이뤄질 경우 상당한 수의 유해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켈리 맥케이그 DPAA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에 합의가 도출될 경우를 대비해 백악관으로부터 관련 조처에 대한 질의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유해 발굴이 단순한 인도적 차원을 넘어 실질적인 외교적 진전의 지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데니 로이 하와이 동서센터 수석 연구원은 현재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큰 관심이 없으며, 특히 북러 밀착 관계 때문에 유해 발굴 작업의 재개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았습니다. 긍정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닌 셈입니다.
80년을 넘어 돌아온 이름
북한 내 발굴 준비가 주목받는 가운데, DPAA가 이미 성과를 내고 있는 현장도 눈에 띕니다. 1944년 대만 공격 중 전사한 프레더릭 R. 슈레이더 미 해군 중령이 80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는데요. 당시 격추되어 일본군에 의해 수습된 그의 유해는 신원미상자로 하와이 국립태평양기념묘지에 'X-136'이라는 번호로 안장되었습니다.
그의 딸 바버라 캐너번은 아버지가 출항 전 사준 곰인형 '테디'를 80년 동안 소중히 간직하며 기다렸습니다. 2023년 재매장식에서는 여든 살이 된 그녀가 곰인형을 품에 안고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지켰는데요. 민간 연구자의 기록 추적과 DPAA의 치과 및 법의인류학적 분석을 통해 2022년에야 신원이 공식 확인되었습니다.
이번 신원 확인은 단순한 DNA 분석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DPAA는 뼈에 남은 탄소와 질소, 산소 등 안정동위원소를 분석해 생전의 식생활과 거주 지역을 추정했는데요. 물의 산소 동위원소 특성을 통해 장기간 거주 지역을 좁히고, 과거 기록과 교차 검증하는 방식이 신원 확인의 마지막 퍼즐이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전사자 중에서는 DNA로 후보를 좁힌 뒤 어머니가 1955년에 쓴 편지 속 골절 기록이 유해의 흔적과 일치해 신원이 밝혀진 사례도 있습니다.
인도적 외교의 가능성과 한계
사실 미군 유해 발굴은 북미 대화에서 여러 차례 성과를 낸 전례가 있습니다. 2018년 북미 대화 분위기 속에서 북한은 55개 상자에 담긴 250명의 유해를 넘겨줬고, 이 중 미군 110명의 신원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어 이번에도 유해 발굴이 실질적인 외교적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옵니다.
반대로 현재의 상황은 과거와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북러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해진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인도적 협상에 적극적으로 응할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전사자와 실종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일은 정치를 뛰어넘는 인도적 사명이기도 합니다. DPAA가 준비 태세를 유지하는 이유는 언제든 대화의 창이 열릴 경우, 즉각적으로 가족의 한을 풀어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존 피게레스 DPAA 선임 작전담당관은 이러한 신원 확인 작업이 결국 가족과의 감정적 연결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가족이 느끼는 그리움은 변함이 없기에, 이름 없는 유해들에게 이름을 되찾아주는 사명은 계속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