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원전의 재가동
3년 가까이 멈춰섰던 고리 원자력발전소 2호기가 마침내 재가동 길을 열었습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1월 13일 회의에서 고리 2호기의 계속운전을 최종 허가하면서, 2033년 4월까지 운영을 연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 결정은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고리 2호기는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국내 최장수 원전으로, 2023년 4월 설계수명 40년이 만료되면서 가동이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2년 7개월간의 공백을 끝내고 내년 2월 재가동을 목표로 준비 작업에 들어갑니다. 이번 승인은 한국수력원자력이 신청한 10개 원전 중 첫 번째 결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큽니다.
AI 시대의 전력 수요 대응
이번 결정 배경에는 AI 산업의 급성장으로 인한 전력 수요 폭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38년까지 현재보다 4배 이상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문가들은 엔비디아 GPU 가동만 해도 대형 원전 1기 분량의 전력이 추가로 필요할 정도로, 인공지능 전환(AX)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정부가 설정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달성도 중요한 고려사항이었습니다.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배출량을 53~61%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원전은 무탄소 전력원으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신규 원전 건설에는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반면, 계속운전은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안전성 논란과 경제적 손실
그러나 이번 결정을 두고 논란도 적지 않습니다. 환경단체들은 이 결정이 국민 안전을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에너지정의행동은 "위헌적인 결정"이라며 승인 철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원안위 회의장에서는 환경단체 회원들의 항의 시위로 일시적으로 회의가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원전 업계는 고리 2호기 가동 중단으로 수천억 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고 추산합니다. 실제로 고리 2호기는 수명연장 신청 후 3년 반 만에 허가를 받았지만, 가동 중단 기간은 회복할 수 없는 손실로 남게 되었습니다. 현행 제도상 계속운전 허가 기간은 운영 정지 시점부터 10년으로 계산되기 때문입니다.
향후 원전 정책의 방향
고리 2호기의 계속운전 허가는 고리 3·4호기, 한빛 1·2호기, 한울 1·2호기 등 다른 9개 원전의 수명 연장 심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달 운영 기간이 만료되는 한빛 1호기를 포함해 총 10기의 원전이 계속운전을 신청한 상태입니다. 이들 원전의 총 발전 용량은 국내 원전 전체의 3분의 1 수준이라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중요성이 큽니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추세를 고려할 때 한국도 원전 운영 기간을 미국처럼 80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에서 허가 만료된 원전 295기 중 91%가 계속운전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논의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수원은 고리 2호기 재가동을 위해 지진계측기 교체, 사용 후 연료 저장조 냉각 시스템 강화 등 18건의 안전 조치를 이행할 계획입니다. 원안위는 현장 점검을 통해 안전기준에 부합하는 설비 개선 여부를 철저히 확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결정이 한국 에너지 정책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