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없었다면' 가정법이 던진 정치적 파장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미발동을 전제로 코스피 6000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이 야당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습니다. 지난 7일 부산 구포시장을 방문한 한 전 대표는 최근 코스피 상승에 대해 "반도체 사이클 회복에 따른 현상"이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하지 않고 정치했다면 5천~6천까지 갔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은 단순한 경제 분석을 넘어 과거 정치적 사건에 대한 '가정법'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한 전 대표는 이어 주가 상승이 서민 경제에 곧바로 와닿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며, 자신의 발언이 이재명 정부 정책의 성과를 부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야당의 집중포화: "망언"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논쟁까지
더불어민주당은 한동훈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즉각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김남국 대변인은 이를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민생을 파탄 낸 정권의 부역자로서의 망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민주당의 공격은 두 가지 축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는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시가총액 72조 원 가량이 증발하는 등 실제로 발생한 경제적 충격을 상기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코스피 상승의 원인을 윤석열 정부의 무능을 극복한 국민의 노력과 상법 개정 등 제도 변화에서 찾는 것입니다.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은 윤석열 정부"라며, 국민의힘이 상법 개정을 필리버스터로 저지한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조국혁신당 역시 "경제 선무당"이라며 비판에 가세하며,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에만 집중한 정책과 내란 행위가 경제 참사를 초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발언 뒤의 정치학: 보수 재건과 선거판의 그림자
한동훈 전 대표의 발언은 단순한 경제 논평을 넘어 그의 정치적 행보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번 발언은 부산에서 '유능한 보수 재건'을 외치며 지역 민심을 살피던 중 나왔습니다. 그는 금정구청장 보궐선거 승리 사례를 들며 "윤 어게인 노선을 끊는 것이 보수 재건의 길"이라고 역설해왔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윤석열이었어도'라는 발언은 과거 노선에 대한 일종의 디스토피아적 가정을 통해 자신이 주창하는 '새로운 보수'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어필하는 정치적 수사로 읽힐 여지가 있습니다. 한 전 대표는 당내 갈등과 관련해서는 '배제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친한계 의원들이 동행하지 않은 이번 부산 방문은 여전히 당내 갈등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야당의 강력한 비판에도 그는 자신의 발언이 왜곡됐다고 반박하며, 금투세 폐지 등 주주 친화적 정책을 자신의 공적으로 내세웠습니다.
논쟁의 본질은 경제 성과의 원인을 두고 벌이는 정치적 해석 싸움으로 보입니다. 한동훈 전 대표를 비롯한 야당 내 일부는 코스피 상승을 글로벌 반도체 산업 호황이라는 외부 요인으로 돌리는 반면, 현 정부와 민주당은 상법 개정 등을 통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논쟁은 6·3 지방선거와 부산 북구갑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경제 이슈를 어떻게 프레임 짜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경제 지표에 대한 상반된 해석은 결국 유권자의 심리를 잡기 위한 정치적 담론으로 기능하며, 한동훈 전 대표의 '가정법 발언'은 그러한 정치적 담론 투쟁의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