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돌파한 첫 걸음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지 한 달여 만에 한국 에너지 수급에 숨통이 트일 징후가 보입니다. 우리나라 유조선 한 척이 중동 전쟁 이후 처음으로 홍해를 안전하게 통과하는 데 성공했는데요. 사우디아라비아 서부의 얀부항에서 원유 200만 배럴을 싣고 출발한 이 선박은 예멘 후티 반군이 활동하는 위험 해역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주된 대동맥이 막히자, 홍해라는 우회로를 개척한 첫 번째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해양수산부는 24시간 상황실을 가동하고 청해부대와 협력하며 선박의 안전을 확보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통과를 '값진 성과'로 평가했습니다.
물론 이번에 수송된 원유는 우리나라 하루 소비량에는 미치지 못하는 규모입니다. 또한 홍해는 지난해 10월 이후 70건 이상의 선박 공격이 발생한 고위험 지역이죠. 정부 역시 그동안 이 지역 운항을 자제해 왔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수급 위기가 심화되자 고심 끝에 우회 경로 이용을 허가한 겁니다. 이번 성공적인 통과는 아직 호르무즈 해협에 머물고 있는 우리 선박 26척과 선원 163명에게 희망을 주는 동시에, 막혔던 원유 수송이 재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 사건이었습니다.
국제적 고립을 넘어선 협력
한국 선박이 홍해를 통과하던 바로 그날, 지구 반대편 프랑스 파리에서는 중요한 국제 회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주최한 '호르무즈 해협 자유항행 정상회의'였는데요. 미국, 이란, 이스라엘 등 분쟁 당사국은 불참했지만, 한국을 포함해 약 50개국 정상 및 대표가 화상으로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이 원유 수입의 70%를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는 핵심 이해당사국임을 강조하며, 해협 내 항행의 자유 보장을 위해 실질적으로 기여할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회의의 주최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호르무즈 해협의 '영구적인 개방'을 촉구하며 방어적 성격의 국제 임무를 주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기뢰 제거 및 해상 정보 능력 제공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죠. 이란 측은 레바논 휴전과 연계해 상선에 한해 해협을 개방한다고 발표했지만, 서방 국가들은 이를 일시적 조치로 보고 영구 해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 논의는 호르무즈 문제가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과 세계 경제 전체의 안보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불확실성 속의 미래 수송로
앞으로의 원유 수급을 낙관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이번에 홍해 통과에 성공한 유조선은 다음 달 초 국내에 도착할 예정이며, 이는 시험적 성격이 강한 운항이었습니다. 정부는 사우디 측과 4~5월 배정 물량 5000만 배럴의 차질 없는 선적을 약속받았고, 6월부터 연말까지 추가로 2억2300만 배럴의 원유를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정유업계는 최악의 공급 단절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됐다며 안도하는 분위기이죠.
그러나 변수는 여전히 많습니다. 홍해 우회로의 안전을 위협하는 후티 반군의 움직임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정부는 현재 미-이란, 이스라엘-레바논 간 휴전 국면 속에서 후티 반군의 개별 공격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지만,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한편 파리에서 열린 국제 회의는 군사적 임무의 구체적 형태나 시기 등에 대해선 합의를 이루지 못했는데요. 궁극적인 해결책은 호르무즈 해협 자체의 봉쇄가 해제되는 것이지만, 그때까지 홍해 우회로는 우리 에너지 안보를 지탱할 중요한 대체 수송로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 위기는 국제 해상 물류의 취약점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위기 대응을 위한 국내적 협력과 국제적 공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