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의 불씨를 살린 2천억 원
홈플러스가 법원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 17일 만에 다시 한번 기회를 잡았습니다. 7월 20일 서울회생법원에 즉시항고장을 제출한 건데요.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이 2,000억 원 규모의 긴급운영자금 조달에 합의하면서 가능해진 절차입니다. 김병주 MBK 회장은 해당 대출 전액에 연대보증을 서면서 자금 확보의 신뢰를 높였고, 메리츠금융 3사는 이사회를 통해 대출을 승인했습니다. 마트산업노동조합과 일반노동조합도 37개 점포 폐점 과정에서 회사의 재정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협조하기로 했는데요. 이처럼 주주와 채권자, 노동자가 한목소리를 낸 덕분에 법원이 재검토에 나설 명분이 생긴 셈입니다.
넘어야 할 과제가 여전히 산적합니다
자금이 확보됐다고 해서 모든 게 풀린 건 아닙니다. 우선 2,000억 원이라는 액수가 홈플러스의 부채 규모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협력업체에 지급해야 할 미지급 납품 대금만 4,100억 원에 달하고, 공익채권 규모는 1조 원을 훌씬 넘어섰습니다. 전국 67개 매장을 다시 여는 데도 상품 매입 비용만 2,000억 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는데요. 여기에 가장 큰 걸림돌은 납품업체들의 불신입니다. 신용등급이 D등급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대기업 납품업체들은 추가 공급이 배임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선지급 조건을 내걸고 있고, 과거 홈플러스익스프레스 매각 당시 피해를 본 중소업체들은 대금 회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습니다. 결국 법원이 회생절차 재개를 허락하더라도 협력사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게 시급한 과제입니다.
유통판도에 미친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홈플러스의 위기는 주변에도 상당한 여파를 남겼습니다. 이마트와 롯데쇼핑은 홈플러스 매출의 일부를 흡수하며 단기간 매출 증가를 경험했지만, 계열사 실적 부진과 온라인 사업 적자 등 내부 문제로 주가 재평가까지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KB국민카드와 신한카드 등 주요 카드사들은 제휴카드 신규 발급을 중단하거나 멤버십 혜택을 축소하는 등 선제적 리스크 관리에 나섰고요. 영주 등 지역에서는 홈플러스 휴업으로 인한 고용 불안과 상권 침체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대형마트 업태 전체가 온라인 쇼핑 성장과 치열한 채널 경쟁 속에서 정체를 겪고 있는 만큼, 이번 사태는 단순한 한 기업의 위기를 넘어 유통 생태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홈플러스는 법원의 판단 이후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본사와 대형마트, 온라인 사업 부문을 대상으로 인수합병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다만 9월 4일이라는 법정 시한까지 실효성 있는 회생 계획안을 마련하고 채권자 동의를 얻어내야 하는 벽이 여전히 높게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