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모인 생명의 구조대
“비행기에 의사 계세요?” 지난 3월 24일, 인천발 마닐라행 비행기 안에서 닥터콜이 울렸습니다. 화장실 앞에서 한 외국인 중년 여성이 쓰러져 의식을 잃고 경련을 일으키는 위급한 상황이었죠. 다행히도 그 비행기에는 세계가정의학회 아시아태평양지역 학술대회에 참석하러 가던 대한가정의학회 소속 의사들이 7~8명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기내 방송에 즉시 응답한 이들은 달려가 환자를 확인했고, 막힌 기도와 떨어지는 혈압으로 인해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바로 파악했습니다.
의식 불명 상태에서 환자의 기도는 이미 막혀 있었고, 자발 호흡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함께 탑승한 김철민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와 김정환 강남을지병원 교수를 비롯한 의사들은 즉시 응급키트를 열고 역할을 분담했습니다. 한 사람은 기도 확보를, 다른 사람은 호흡 상태 점검을, 또 다른 이는 혈압을 확인하기 시작했죠. 이들의 빠른 판단과 행동이 있었기에 환자는 심정지라는 최악의 상황을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협력과 장비가 만든 기적
가장 시급한 과제는 막힌 기도를 뚫는 것이었습니다. 초기 기도 삽관 시도는 환자의 체구와 혀의 위치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의사들은 기내에 비치된 대체 기도 확보 기구인 후두마스크(I-gel)를 활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기도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고, 앰부백으로 산소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죠. 이렇게 여러 명의 전문가가 즉시 협력할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닙니다. 대한가정의학회는 평소에도 응급 상황 대비 교육을 지속해왔고, 각자 전문 분야에서의 경험이 위기에서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배경이 됐습니다.
약 3시간 30분에 걸친 긴 응급처치가 이어졌습니다. 앰부백을 이용한 강제 인공호흡으로 호흡을 유지시키고, 계속해서 혈압과 의식을 확인했죠. 수축기 혈압이 80㎜Hg 아래로 떨어지는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의사들의 끈질긴 처치로 환자의 안색은 서서히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자발 호흡이 돌아오고, 혈압도 정상 범위에 근접하는 성과를 보였습니다. 승무원들의 신속한 응급키트 준비와 협조도 이 모든 과정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위기 대응의 교훈과 예방
이 사건은 위급 상황에서 일반인과 항공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김철민 교수는 인터뷰에서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먼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승무원을 호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호흡과 맥박을 확인한 후, 필요하다면 일반인도 심폐소생술(CPR)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죠. 항공사 측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 지원 시스템을 더욱 견고히 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한편, 이런 기내 응급 상황을 예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장시간 비행은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어요. 전문가들은 장거리 여행 전 건강 상태 점검을 당부하고, 기내에서는 꾸준한 수분 섭취와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탈수와 혈전 생성을 방지할 것을 권고합니다. 이번 사건은 의료진의 헌신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예방의 중요성과 위기 대응 체계의 필요성을 동시에 일깨워주었습니다. 마닐라 공항에 무사히 도착해 현지 응급의료팀에 인계된 환자의 이후 회복을 많은 이가 기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