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서류 너머 보이지 않은 민심
미셸 스틸 주한 미국대사가 최근 서울에 부임하며 1년 반에 걸친 공백이 메워졌습니다. 한국계 최초의 여성 대사인 스틸 대사는 연방하원의원 시절부터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 중국의 탈북민 강제북송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내왔는데요. 남편인 숀 스틸 변호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도 긴밀한 소통이 가능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이력과 정치적 배경만으로 성공적인 임무 수행이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과거 주한 미국대사들의 사례가 보여주듯, 한국 사회의 정서와 정치적 파고를 읽는 능력이 진짜 외교력이 되곤 했습니다.
2002년의 아픈 기억, 허바드의 실패
스틸 대사가 반드시 새겨야 할 교훈은 2002년 토머스 허바드 전 대사의 경험에 담겨 있습니다. 당시 미군 장갑차가 여중생 두 명을 치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허바드 대사는 이 비극 앞에서 한국인의 슬픔과 분노에 공감하기보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법적 절차만을 강조했습니다. 미국이 재판권을 행사하는 게 정당하다는 논리를 앞세웠고, 가해 병사들을 한국 사법기관에 넘기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이미 1992년 윤금이 살해 사건으로 인해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공분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습니다. 허바드 대사의 경직된 대응은 결국 광화문 촛불집회로 번지는 대규모 반미 시위를 촉발했고, 12월 대선의 핵심 변수까지 되었습니다. 미 군사법원이 가해 병사들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즉각 출국시키자 국민적 분노는 극에 달했는데요.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한국과 미국이 사과와 책임을 수용하는 문화적 틀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외교의 마지막 방어선은 공감입니다
물론 국가 간 협정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외교는 법률서류의 논리만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크리스토퍼 힐, 캐슬린 스티븐스, 성 김, 마크 리퍼트 등 과거 성공했던 주한 대사들은 대중과의 소통과 문화적 이해를 통해 신뢰를 구축했습니다. 이들은 위기 상황에서 먼저 한국 국민의 감정을 헤아리며 정치적 판단을 내렸고, 그 결과 한미 관계를 더욱 공고히 만들 수 있었습니다.
스틸 대사에게 주어진 과제는 명확합니다. 북핵과 동맹 문제만큼이나 한국 국민의 마음을 읽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주한미군 관련 갈등이나 위기 상황에서는 법적 정당성보다 먼저 인간적인 공감을 보여주는 게 외교적 재앙을 막는 지름길입니다. 1년 반의 공백을 메운 스틸 대사의 서울 행보가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지금부터가 진짜 시험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