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보호명령에도 막지 못한 비극
9월 1일 오전 7시가 넘은 시점, 경기 광주시 능평동의 한 다세대주택 계단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30대 여성이 출근하려는 순간, 별거 중이던 남편이 흉기를 휘둘렀고, 결국 숨을 거두었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부부의 5살 딸이 함께 있었고, 아이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수십 차례 찌르는 장면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피해 여성은 경찰이 지급한 스마트워치로 긴급 신고를 했지만, 병원으로 이송된 뒤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법원은 이미 남편의 접근을 막는 임시보호명령을 내렸고, 경찰도 신변 보호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조치가 비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가해 남성은 범행 후 휴대전화를 버리고 달아났으나, 약 4시간 뒤 수원의 한 모텔에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이혼 소장에 노출된 주소와 계획된 범행
가해자는 현직 공무원인 30대 남성으로, 이혼 소송에서 불리한 결과가 예상된다는 이유로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는 위자료와 재산 분할, 양육비까지 자신에게 불리하게 기울 것이라는 앙심에 약 3주간 살해를 준비했습니다. 문제는 이혼 소송 서류를 송달받는 과정에서 아내의 새로운 거주지 주소가 그에게 그대로 노출됐다는 점입니다. 피해자는 주소가 알려진 것 같다고 경찰에 상담한 적도 있었지만, 이미 남편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뒤였습니다.
과거에도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피해 여성은 지난해 3월부터 남편의 폭행과 협박을 호소하며 4차례 이상 경찰에 신고했고, 지난 6월에는 흉기로 위협한 혐의로 불구속 송치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처벌 불원 의사를 밝히고 별거와 이혼 소송으로 상황을 넘기려 했습니다. 하지만 반복된 가정폭력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결국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열애한 임시숙소와 주소 보호의 사각지대
이번 사건은 피해자 보호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도 드러냈습니다. 피해 여성은 남편을 피해 거처를 옮겼지만, 경찰이 안내한 임시숙소는 서울 금천구의 모텔형 시설이었습니다. 직장과 어린이집과 거리가 너무 멀어 자녀 양육도 어렵고 일상도 유지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녀는 입소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은 2023년부터 LH와 협력해 임대주택을 활용한 숙소를 마련하려 했지만, 예산과 부지 확보에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또한 이혼 소송에서 피해자의 주거지가 가해자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절차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안전하게 일상을 지켜나가려면 물리적 거리 확보와 더불어 주소 보호라는 법적 장치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이번 사건은 제도가 현장에서 얼마나 취약하게 운영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