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자 협곡에 쏟아진 '지옥의 물폭탄'
네팔과 중국 티베트 접경지역이 끔찍한 물보라에 휩싸였습니다. 지난 8월 27일, 히말라야 산맥 일대에서 시작된 대규모 홍수와 산사태로 양국에서 사망자가 360명을 넘고 실종자는 약 1,400명에 달하는 참사가 발생했는데요. 특히 네팔 라수와 지역의 좁은 V자형 협곡 지형이 피해를 극대화했습니다. 빙하수와 토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오면서 주민들이 대피할 틈조차 주지 않았고, 마을 전체가 진흙더미로 변해버렸습니다.
이번 재난의 원인은 빙하 붕괴로 인한 돌발 홍수로 추정됩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네팔과 중국 국경 부근에서 빙하가 무너지면서 규모 5.2에 해당하는 진동파가 포착되었다고 분석했는데요. 무너진 빙하가 강물을 막아 호수를 이루었다가 한꺼번에 범람하면서, 불과 30분 만에 수위가 최대 9m까지 치솟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티베트 지룽현에서도 같은 원리로 산사태가 발생해 실종자가 558명으로 늘었고, 이 중에는 20개국 이상의 외국인 260명이 포함되어 국제적인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발전소 현장이 사라지다
이번 참사에서 한국 기업의 피해도 눈에 띕니다. 한국남동발전과 두산에너빌리티가 공동 건설 중이던 네팔 라수와 지역의 어퍼트리슐리-1 수력발전소는 홍수로 취수 시설과 베이스캠프가 각각 90%가량 소실되었습니다. 총사업비 약 8,900억 원이 투입된 이 발전소는 올해 말 준공을 앞두고 있었는데, 네팔 전체 전력 공급량의 20%를 책임질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준공 일정에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한국인 28명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지대가 높은 파워하우스에 있던 10명 중 9명은 네팔 군 헬기를 통해 구조되었지만, 지대가 낮은 숙소와 사무실에 있던 9명은 여전히 연락이 두절된 상태입니다. 두산에너빌리티 소속 현장소장은 현지인 직원들이 모두 구조될 때까지 현장에 남기로 결정했는데요. 정부는 외교부·경찰청·소방청 인력 11명으로 구성된 합동 신속대응팀을 급파하고, 공군 KC-330 '시그너스' 수송기 투입을 결정했습니다. 또한 네팔에 10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빙하가 녹으면 달라지는 것들
사실 이번 재난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기후 위기의 신호탄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히말라야 지역의 빙하는 2000년 이후 녹는 속도가 2배로 빨라졌으며, 전문가들은 일부 지역이 이미 거주 불능 상태인 '레드라인'에 도달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빙하가 후퇴하면서 산비탈이 불안정해지고, 이것이 토석류와 돌발 홍수로 이어지는 연쇄 재난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겁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이 적극 진출한 남아시아 수력발전 시장은 히말라야의 풍부한 물줄기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상 이변이 잦아지면서 인명과 시설 피해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는데요. 이제는 단순한 사업 확장을 넘어 예측부터 대피까지 통합된 재해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협곡 지형과 빙하 위험을 고려한 정밀한 홍수 위험 지도 작성과 조기 경보 시스템 구축이 시급해 보입니다. 현재 네팔과 티베트에서는 강우 예보가 이어지면서 추가 붕괴와 하류 홍수 위험이 여전히 남아있어, 수색 작업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