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선 3척의 '유령 항해'
2026년 5월, 한국 해운사 장금상선이 소유·운영하는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3척이 위치추적장치(AIS)를 끈 채 이란이 봉쇄 중인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로이터 통신은 케이플러와 LSEG 데이터를 인용해 이 사실을 보도했는데요. 가장 먼저 포착된 건 '바스라 에너지'라는 선박입니다.
바스라 에너지는 5월 1일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의 지르쿠 터미널에서 200만 배럴의 원유를 선적했습니다. 이후 5월 6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고, 5월 8일 UAE 푸자이라 원유 터미널에 무사히 화물을 내렸습니다. 같은 날 '아기오스파누리오스Ⅰ'와 '키아라 M'도 각각 이라크산 원유 200만 배럴을 싣고 해협을 빠져나갔습니다. 세 척이 실은 원유는 총 600만 배럴에 달합니다.
이란의 경고와 한국 선박의 도전
이번 사건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AIS를 끄거나 허가 없이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대해 '즉각 공격 대상'이라고 경고한 직후에 발생했습니다. 이란은 미국과의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었는데요. 한국 선박들은 이 같은 위험을 무릅쓰고 암행 항해를 감행한 겁니다.
장금상선 측은 "바스라 에너지는 다른 업체에 빌려준 선박이라 한국 관리 선단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또한 해당 선박에는 한국인 선원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장금상선이 150여 척의 VLCC를 보유하고 있고, 올해 1월 말부터 페르시아만에 빈 유조선 6척을 대기시킨 점을 고려하면, 전쟁 리스크를 해상 저장소 사업 기회로 활용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중동 원유 수출의 지속성 확인
이번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탈출 성공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이란의 휴전이 위태로운 가운데, 중동산 원유 수출이 여전히 굴러가고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인데요. 아기오스파누리오스Ⅰ는 베트남 응이선 정유시설로 향했고, 키아라 M의 행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오만 무스카트 항구는 여객선 대신 무역 항구로 전환해 사용 중이며, 두바이에서 온 컨테이너 트럭들이 정차해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란이 통제 구역을 UAE 앞바다까지 확장하면서, 육로를 통한 화물 우회 경로가 활성화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UAE가 이란 남부 라반섬 정유시설을 공습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이란은 UAE와 쿠웨이트에 보복 공습을 감행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한국 유조선들의 호르무즈 통과는 성공했고, 이는 중동 에너지 시장과 물류망이 여전히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