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수치의 문제점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과학기술 정책 발표에서 언급한 'R&D 성공률 90%'라는 수치에 대해 과학계에서 강력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 염한웅 단장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으로 5년간 활동하며 관련 부처에 확인한 결과, R&D 과제 성공률이라는 데이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국회 질의 과정에서 잘못 해석된 내용이 세간에 퍼진 것으로 보이는데요, 근거 없는 통계가 정책의 근간이 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염 단장은 더 나아가 "연구 과제를 성공과 실패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성공률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만약 정부가 쉬운 과제만 선택하게 하는 평가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도전적인 연구를 회피하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습니다.
평가 시스템의 근본적 한계
현재 R&D 평가는 정량평가가 아닌 정성평가를 통해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과학자들의 평가에 특정 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대해 과학계는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습니다. 염 단장은 "과학자 평가에 정부가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수준 높은 평가와 자율적인 평가를 저해하는 오만한 정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연구 과제의 우수성은 과학자들이 스스로의 기준에 의해 판단되어야 하며, 정부 부처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국가과학자 제도의 부활과 같은 정책도 인재 유치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오히려 연구자들의 처우 개선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겁니다. 기업 연구개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연구 환경으로 인해 우수 인재들이 외국이나 국내 대기업으로 유출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책 지속성의 중요성
KAIST 송영민 교수는 정부의 새로운 시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정책 변화보다는 지속성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한국 사회의 '학문적 FOMO' 현상을 지적하면서, 연구자의 역량과 노력보다 시기적 정책 변화가 결과를 좌우하는 현실은 연구 의욕을 갉아먹고 공정한 경쟁의 기반을 무너뜨린다고 비판했습니다. 지난 12년간 신진연구자 과제의 예산과 기간이 지속적으로 변화해 연구자들에게 불신을 안겨왔다는 설명입니다.
송 교수는 국가과학자 제도가 5년 뒤 중단될 경우 권위가 무너지고, 연구자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안정적으로 설계하기 어려워진다고 우려했습니다. 정부가 연구 생태계 혁신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정책의 일관성을 10년 이상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정권 교체마다 연구 과제 및 예산 정책이 바뀌는 상황에서 연구자들이 장기적인 목표보다는 단기적인 과제에 매달리는 방어적 연구 문화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자문 시스템의 공백과 전망
과학기술 정책 자문 시스템의 부재 또한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과기자문회의 부의장 공석 장기화, KAIST 및 IBS 기관장 인선 지연 등 인력 운영의 문제점이 과학계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염한웅 단장은 이러한 상황을 지적하며, 과학기술 정책 자문 시스템의 정상적인 작동을 촉구했습니다. 참모진의 역할 부재는 정책의 전문성과 현장 적합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됩니다.
인공지능과 해외 우수 인재 유치뿐만 아니라 국내 인재 확보 및 육성에 대한 정책적 고민과 대안 마련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대학 연구자들의 처우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과학기술 정책의 성패는 결국 현장 연구자들의 신뢰와 참여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