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는 아직 '위기'가 아니다?
미국 에너지부의 크리스 라이트 장관은 최근 유가 상승에 대해 차분한 평가를 내놨습니다. 그는 현재의 가격 수준이 글로벌 석유 수요 자체를 위축시킬 만큼 높지 않으며, 최근의 가격 변동은 단기적인 공급 차질에 따른 현상이라고 진단했죠. 라이트 장관의 발언은 시장의 자정 기능을 신뢰하며, 당장의 공황적인 조치보다는 장기적인 공급망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란 관련 발언 한 마디에 시장이 반응해 가격이 하락한 점을 예로 들며, 시장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추가적인 전략비축유(SPR) 방출 가능성에 대해서도 "가능성은 있지만 매우 낮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내년 말에는 현재보다 더 많은 원유가 비축된 SPR을 갖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 있게 전망했어요. 이는 전임 정부의 비축유 훼손을 비판하며, '교환' 방식을 통해 비축량을 늘려나가는 현 정부의 관리 방식을 강조하는 맥락이었습니다. 일각에서 제기된 유가가 배럴당 17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단호히 일축했습니다.
한국, 수급 루트 확보에 '릴레이 외교' 가동
한편 대양 건너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접근이 한창입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약 두 주에 걸쳐 사우디아라비아, UAE, 카타르, EU, 필리핀 등 주요국 자원 담당자들과 릴레이 회담을 진행했습니다. 이란-미국 간 긴장으로 인한 호르무즈 해협 통행 불안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는 생존 문제와 직결됩니다. 이에 김 장관은 사우디와 UAE에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대체 항로(얀부항, 푸자이라항)를 통한 원유 확보를 지원해 줄 것을 직접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외교 행보에 나섰죠.
카타르에 대해서는 이란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LNG 생산 시설 상황에 대한 우려를 전하며, 기존 장기 도입 계약의 안정적인 이행을 협의했습니다. 또한, EU에는 국제에너지기구(IEA) 주도의 공동 비축유 방출 결정에 협력해 준 데 대해 감사를 표하며, 한국 역시 역대 최대 규모의 비축유를 방출해 시장 안정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이 모든 행보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있습니다. 외부 충격에도 불구하고 국내 에너지 수급의 불씨를 끄지 않겠다는 것이죠.
신뢰 대 관리, 다른 전략 같은 목표
표면적으로 보면 미국의 '시장 신뢰' 접근과 한국의 '적극적 관리' 접근은 대조적입니다. 미국은 자국의 거대한 생산 기반과 비축량, 그리고 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비교적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라이트 장관이 해외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반면, 한국은 자원 부국이 아닌 수입국으로서의 한계를 뼈저리게 인지하고 있어요. 때문에 가능한 모든 외교적 채널을 동원해 물리적 공급 루트를 다변화하고, 계약 이행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겁니다.
두 국가의 대응이 다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에너지 안보라는 점에서 같습니다. 미국의 접근은 시장이 장기적으로 균형을 찾을 것이라는 낙관론에 기반한다면, 한국의 접근은 어떠한 변수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위기 관리 철학이 반영된 것이죠. 글로벌 공급망이 하나로 연결된 현실에서, 미국의 장기적 관점과 한국의 현실적 대응은 서로를 보완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향후 전망과 관련해 라이트 장관이 디젤 유가 상승에 대비한 추가 물량 공급 방안을 언급한 것은, 시장을 믿는 미국도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님을 시사합니다.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만큼, 각국의 이러한 다층적인 대응 전략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