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랠리, 이번에는 다르다
AI(인공지능) 주식의 급등세를 두고 '거품'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들의 눈은 다릅니다. 블룸버그통신이 미국, 유럽, 아시아의 주요 운용사 39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관의 81%에 해당하는 30곳이 내년에도 증시 강세를 예상하며 위험자산 선호 투자를 유지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이들은 AI 랠리가 단순한 투기 열풍이 아니라, 기술 기업들의 탄탄한 실적과 성장 가능성에 기반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죠.
과거 닷컴 버블과의 비교는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핵심적인 차이점을 지적합니다. 노던 트러스트 자산운용의 안위티 바후구나 CIO는 기술 기업들이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를 근거로 AI 랠리를 거품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매그니피센트7'이라 불리는 빅테크 기업들의 최근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31배로, 2021년 고점인 40배를 밑도는 수준입니다. DWS의 데이비드 비앙코 CIO는 현재의 강한 상승 추세에 동참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조언하며, 역발상 투자를 시도할 시점이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종목 장세'의 한계와 빅테크 중심 재편
그러나 AI 열풍이 모든 주식에 고르게 불어닥칠 것이라는 기대는 조심스럽습니다. DB증권의 강현기 연구원은 AI 산업이 막대한 시설 투자 비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과거 닷컴 버블 때처럼 중소형주 중심의 '종목 장세'가 나타나기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빅테크 기업만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 계획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구조라는 겁니다. 중소형 기업이 AI 로드맵을 발표하더라도 현실적인 자금 조달 문제로 시장의 확신을 얻기 힘들다는 지적이죠.
이는 한국 증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과거 닷컴 버블 당시에는 코스닥이 코스피를 크게 앞섰지만, 이번 AI 국면에서는 코스닥의 상대적 열세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신기술 산업 참여를 위한 진입 장벽이 훨씬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AI 테마에 편승한 중소형주의 급등을 기대하기보다는, 산업 재편의 큰 흐름을 읽는 데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로벌 확장과 남아있는 리스크
내년 강세 전망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웰링턴 운용의 앤드류 하이스켈 주식 전략가는 일본, 대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 실적 모멘텀이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유럽과 신흥시장에서도 실적 성장세가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습니다. 또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와 맞물려 중소형주 강세 전망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산탄데르 자산운용은 내년 미국 소형주의 이익 성장률이 20%를 넘을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죠.
물론 리스크 요인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의 물가입니다. 아문디 SA의 아멜리 드랑뷰르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물가 상승이 재개될 경우 주식과 채권 시장 모두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또 다른 불확실성은 정치적 요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과 그에 따른 무역정책 변화는 글로벌 공급망과 시장 심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적 변수로 꼽힙니다.
결국 핵심은 AI 기술이 창출할 생산성 향상과 새로운 수익 모델에 대한 시장의 믿음입니다. 운용사들의 다수가 내년 강세를 예상하는 배경에는 AI가 단기적 유행이 아닌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혜택이 고르게 분배되기보다는 자본과 기술력이 집중된 빅테크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남아있는 거시경제적 리스크를 감안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