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방침을 고수하는 가운데, 의대 교수들과 의사협회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의대 교수협)는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의대 증원은 교육 붕괴를 부르고 미래 유휴 인력을 양성할 뿐”이라며 정책 재검토를 촉구했습니다. 대한의사협회도 11일부터 정부청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시작하는 등 갈등이 점차 격화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의사인력 수급 추계위원회의 전망(2035년 최소 1535명~최대 1만1136명 부족)을 근거로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현장에서는 교육 인프라 부족과 추계의 비과학성을 이유로 맞서고 있습니다.
교육 현장의 비상: 더블링과 인프라 부족
의대 교수협에 따르면,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서 2024학년도와 2025학년도 학생이 동시에 수업을 듣는 ‘더블링’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강의실, 실습실, 교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2027년에는 2024학년도 학생들이 3학년이 되어 해부학 실습을 시작해야 하는데, 실습 시설이 모자라 제대로 진행할 수 없는 ‘교육 불능’ 상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교육 인프라를 무시한 채 의대생만 늘리면 결국 의료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뿐”**이라는 게 교수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입니다.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도 이 같은 우려를 공유하며, “의대 증원은 지역의료 및 필수의료 위기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전의비는 “과거 정책 실패와 행정적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의사 수 증가에만 집중하는 것은 의료 시스템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며, 실제로 2024년 의대 증원 정책 이후 2026년 지방 국립대병원의 내과·소아과 전공의 지원이 전무해지는 등 부작용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추계 논란: 과학성 부재 vs 정부의 근거
정부가 의대 증원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의사인력 수급 추계위원회의 전망입니다. 추계위는 지난해 8월부터 12차례 회의를 거쳐 2035년과 2040년에 최소 1535명에서 최대 1만1136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의대 교수협과 의협은 이 추계가 미래 기술 발전(AI, 로봇 등)을 반영하지 못했으며, 단순히 과거 데이터를 외삽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
전문가들은 의사인력 수급 추계가 미래를 정확히 맞추는 예측이 아니라, 정책 선택에 따른 시나리오를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현재 추계위가 사용한 모형은 장기 전망에 부적합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ACMMP)는 50여 개 변수를 반영한 모형을 통해 신뢰성 있는 추계를 시행하고, 자료가 부족할 경우 오히려 정원 유지를 권고합니다. 반면 국내 추계위는 자료 부족 지적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결과를 발표했고, 정부는 이를 근거로 증원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의협은 “가짜 숙의 중단하고 진짜 논의를 실시하라”며 정부청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좌훈정 범대위 투쟁위원장은 “대한민국 국격에 맞는 진짜 검증을 실시하라!”고 외쳤습니다.
미래 의료,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의대 증원 논쟁의 본질은 ‘미래에 얼마나 많은 의사가 필요한가’에 있습니다. 전의비는 지역의료 붕괴와 필수의료 위기가 의사 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수도권 쏠림 현상과 비대해진 대형병원 중심의 의료 체계 등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합니다. 필수의료 전문의 양성 및 유지 방안, 진료의뢰체계 복원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의대 교수협은 학부모들에게 “의사 고소득은 신기루”라며 자녀를 의대에 보내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AI 등 기술 발전으로 의사의 역할이 크게 변할 수 있고, 의사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미래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는 호소는 단순한 반발이 아니라 시대 변화에 대한 경고로 읽힙니다.
정부는 의대 증원이 장기적 의료 수급 문제를 해결할 핵심 수단이라고 보고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냉담합니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숫자 놀이를 넘어,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임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