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조 원 슈퍼예산, 반도체 호황이 바꾼 국가 재정
정부가 내놓은 2027년 예산안은 그 규모만으로도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총지출 820조 9천억 원으로, 올해보다 93조 원 이상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따른 세수 호황이 재정판을 통째로 뒤바꿨는데요. 총수입은 880조 8천억 원에 달하고, 통합재정수지는 59조 9천억 원 흑자를 기록할 전망입니다. 덕분에 정부는 국가채무비율을 51.6%에서 48.3%로 낮추면서도 사상 최대의 지출 규모를 편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예산의 핵심은 '미래대응기금'입니다. 반도체 호황으로 발생한 추가 세수 162조 3천억 원을 이 기금에 모았는데요. 내년에는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분야에 45조 4천억 원을 집중 투자하고, 12조 5천억 원으로는 국채 발행 물량을 줄일 계획입니다. 나머지 104조 4천억 원은 향후 세수 감소에 대비한 여유자금으로 남겨두며 중기적인 재정 안정성을 꾀하고 있습니다.
첨단 산업과 인프라에 쏟아붓는 돈
예산의 방점은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라는 3대 메가프로젝트에 찍혔습니다. AI 분야 예산만 21조 3천억 원으로 거의 두 배에 가깝게 늘었고, 피지컬 AI는 3조 1천억 원으로 3배 이상 증액되었습니다. 정부는 여기에 반도체 특별회계 2조 6천억 원을 더해 용인과 평택의 반도체 생산기지를 빠르게 가동할 예정입니다. 청년 지원을 위한 43조 3천억 원과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한 33조 원도 규모가 상당합니다.
안정적인 전력과 용수 공급은 첨단 산업의 생명줄입니다. 정부는 한전과 수자원공사에만 총 7,500억 원을 출자하며 송전망과 용수 인프라 구축을 뒷받침했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송전단 에너지저장장치와 변전소 건설에 6천억 원이 넘는 예산을 편성했고, 동복댐 증축과 나주댐 대체 공급 등에도 1천억 원 이상이 투입됩니다. 교통 인프라도 빼놓을 수 없는데, GTX A·B·C 노선에 4천 518억 원, 월곶~판교 복선전철에 2천 150억 원이 배정되어 수도권 광역 교통망 확충이 가팔라질 전망입니다. 주택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PF 대출 이차보전에도 1천 696억 원이 신규 편성되었습니다.
흑자 재정 뒤에 숨은 논란과 과제
엄청난 규모의 예산이지만, 곳곳에 쟁점도 있습니다. 미래대응기금의 운용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정부는 기금 지출액의 30%를 국회 승인 없이 변경할 수 있도록 해 재량권을 크게 늘렸는데, 이를 두고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는 국가재정법 위반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습니다. 사업 목적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 국회 감시를 피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환경 분야의 상대적 소외도 눈에 띕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예산은 25조 7천억 원으로 역대 최대이지만, 기존 환경 예산은 4.5% 증가에 그쳤습니다. 전기차 보조금과 재생에너지 지원은 확대되지만, 정작 환경보전 예산의 증가율은 전체 지출 증가율을 크게 밑돌았습니다. 정부는 인프라 적기 구축과 국민 체감 환경 개선을 동시에 노린다고 밝혔지만, 세부 과제별 균형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