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공기업 시대를 여는 구조 개편
정부가 공공기관 524개를 415개로 줄이는 대대적인 개편안을 내놓았습니다. 발전 5개사를 하나로 묶어 가칭 '한국발전'을 만들고,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는 '에너지자원공사'로 합칩니다.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의 4개 항만공사 역시 '한국항만공사'로 통합되죠. 거기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개발과 주거 기능으로 쪼개집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공기관의 과도한 팽창을 지적한 뒤 추진되는 조치인데요. 이번 개편은 단순한 숫자 줄이기를 넘어 국가 핵심 인프라의 운영 방식을 바꾸는 작업입니다.
정부는 복합 위기와 AI 대전환 시대에 흩어진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발전 부문의 경우 2001년 경쟁 도입을 위해 분리된 지 25년 만에 다시 하나가 되는 셈인데, 재생에너지 건설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 여력을 확보하고 중복 업무를 줄이겠다는 목표입니다. 항만 공사 통합 역시 과당 경쟁을 막고 해외 거점 조성을 공동으로 추진하겠다는 취지입니다.
통합의 그림자와 전문성 논쟁
하지만 이런 통합이 과연 효율적인지를 두고 현장에서는 의문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축산환경관리원을 통합하는 방안도 마찬가지인데요. 방역과 환경은 긴급성과 성격이 전혀 달라 단일 체계로 묶이면 전문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문제는 통합의 규모가 커질수록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점입니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합병은 부실 전이 문제로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항만 공사 통합에 대해서는 인천항이 부산항의 보조적 역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역적 우려가 커요. 발전 5사가 합쳐져 탄생할 1만 4천여 명 규모의 초대형 공기업 역시 방만 경영과 시장 지배력 남용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거대한 덩치가 오히려 의사결정을 느리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역의 눈치 싸움과 남은 숙제
이번 개편이 발표되자마자 지자체들의 본사 유치 경쟁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경남 진주는 기존 남동발전 청사를 활용할 수 있다며 사활을 걸고 있고, 전북과 충남, 부산, 울산 등도 각자의 강점을 내세우며 뛰어들었습니다. LH가 분리될 경우 진주 혁신도시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죠.
재무 구조 역시 중요한 변수입니다. LH를 분리할 때 173조 원에 달하는 부채를 어떻게 나누고 보전할지가 민감한 쟁점입니다. 주택도시기금 여유 자금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추가 재정 투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이번 개편의 성패는 통합 이후에 어떤 성과를 내느냐에 달려 있을 겁니다. 숫자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의 전문성을 지키면서도 국민에게 실질적인 서비스 개선을 보여주는 것이 관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