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증거의 문을 닫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던 허종식 의원과 윤관석, 임종성 전 의원 등이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는 지난 18일 원심을 파기하며 무죄를 선고했는데요, 그 결정적 이유는 사건의 핵심 증거로 지목됐던 녹취록의 적법성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법원은 수사 과정에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아무리 내용이 중요해도 유죄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죠.
이번 판결은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대표 후보 지지와 관련해 돈이 오갔다는 의혹으로 기소된 인물들에게 내려졌습니다. 1심에서는 허종식 의원과 임종성 전 의원에게 징역 3개월에 집행유예 1년, 윤관석 전 의원에게 징역 9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녹취록,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판결을 뒤집은 가장 큰 요인은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휴대전화 통화 녹취록이었습니다. 검찰은 이 녹취록을 주요 증거로 제시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위법 수집 증거'로 판단했습니다. 문제가 된 건 수사 과정의 절차였습니다. 이정근 전 부총장은 다른 사건(알선수재)의 수사 과정에서 이 통화 내용을 임의로 제출했고, 해당 수사가 종결된 후에는 녹음 파일이 폐기됐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이 파일을 보관했다가 별도의 재수사에서 다시 꺼내 썼다는 점에서 적법한 절차를 벗어났다는 판단이 내려진 겁니다.
법원은 이 녹취록이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임의 제출된 것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보았습니다. 게다가 수사가 끝난 증거를 다른 사건에 사용한 점도 적법성에 큰 흠이 되었죠. 결국 이 핵심 증거가 법정에서 배제되면서, 나머지 증거들—국회의원 모임 사진이나 관계자 진술 등—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입증하기에 부족하다고 봤습니다. 이는 송영길 전 대표와 노웅래 전 의원의 재판에서도 같은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증거 능력에 대한 법원의 엄격한 잣대
이번 판결은 단순히 개별 사건의 결과를 넘어, 법원이 증거 수집의 적법성에 대해 얼마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진실 발견'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절차의 정당성을 지키는 것이 더 근본적인 법의 원칙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죠. 재판부는 위법하게 확보된 증거는 그 내용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이러한 법원의 입장은 정치권에 상당한 파장을 예고합니다. 당초 이 사건은 정치권에 큰 논란을 일으켰는데요, 법적 책임 문제는 일단 현재로서는 원점으로 돌아간 셈입니다. 무죄 판결을 받은 측에서는 당연히 법적 소명이 끝났다고 강조할 것이고, 반대 측에서는 사건의 실체적 진상 규명이 어려워졌다고 아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이번 판결은 검찰의 수사 관행에 대한 질문도 던집니다. 수사 기관이 결과를 얻기 위해 절차를 유연하게 운용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항소심 선고 후 법원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한 임종성 전 의원과 윤관석 전 의원의 심정은 각별했을 텐데요, 이들의 향후 정치적 행보에도 변화가 예상됩니다. 사건의 법적 공방은 대법원 상고 여부에 따라 최종 결론이 나겠지만, 증거의 적법성이라는 원칙적 논의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입니다.